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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역한문학회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제30권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83 - 104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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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른바 ‘漢文四大家’의 일원으로 널리 알려진 象村 申欽(1566~1628)과 月沙 李廷龜(1564~1635)의 산문에 관한 인식과 실천 양상을 비교하고, 16세기 후반~17세기 후반에 걸친 문단의 주류적 이해가 어떠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사대가가 대표성을 획득하게 된 데에는 조선후기 고문담론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金昌協 계열 문인들의 영향이 지대하게 작용했다. 김창협은 신흠의 문장이 ‘옛것에 견주어 문사를 수식하여[視古修辭] 가꾸어낸 공이 많다’면, 이정구의 문장은 ‘뜻에 따라 펼쳐내어[隨意抒寫] 여유로운 풍치가 빼어나다’고 하였다. 또한 文辭를 추구하는 이들은 신흠을 지지하고, 이치를 추구하는 이들은 이정구를 지지하였다고도 하였다. ‘視古修辭’는 後七子의 영수 李攀龍이 前七子의 영수 李夢陽의 문학적 특징을 규정한 말로, 이들은 16세기 후반~17세기 초반 조선 문단에 복고적 문풍이 형성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런 점에서, 비록 宣祖의 후원과 지지를 업은 이정구가 「무술변무주」 한 편으로 문단에 명성을 떨쳤지만, 이 시기 문단의 주류는 ‘隨意抒寫’한 이정구의 문장이 아니라 ‘視古修辭’한 신흠의 문장을 지지하고 있었던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양란 이후 주자학적 학문 풍토가 강화되고 전후칠자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구체화됨에 따라 평이하고 담백한 글을 특징으로 하는 이정구의 문장이 더 낫다는 인식이 표면화하였다. 이와 같은 양자 간의 차이는 그들의 작품에도 반영되어 있는 바, 신흠의 문장이 고아하고 화려한 문채미를 구현하고 있다면 이정구의 문장은 평이하고 여유로운 미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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