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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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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46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119 - 142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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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澤堂 李植은 前後七子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던 17세기 초 문단에서 이념적 차원에서 당송고문을 지지한 문학가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당송고문가로서의 위상을 확인케 해 준 「作文模範」, 「頤菴集後敍」, 「丙子諭大學諸生榜」 외에 「學詩準的」, 「示兒孫等」, 「纂注杜詩澤風堂批解」 등으로 시선을 넓혀보면 그가 진한고문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미간행도서인 「澤堂先生遺稿刊餘」를 살펴보면 「澤堂集」에 투사된 이념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도 발견되는데, 이 또한 택당이 전후칠자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택당은 詩 방면에 있어서는 전후칠자와 유사한 논리를 지니고 있었으나 文에 있어서는 전후칠자를 철저히 배격했다. 이는 詩와 달리 文에는 ‘時宜性’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택당은 시의성을 기준으로 볼 때, 전후칠자의 진한고문보다 당송의 고문이 현실을 더욱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宋時烈이 󰡔택당집󰡕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택당의 위상에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자료들을 누락시킴으로써 택당의 당송고문가로서의 지위는 한결 선명해졌으며, 마침내 당송문의 입장에서 진한문을 비판한 최초의 비평가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 요컨대 택당의 문장관은 택당 자신의 선택일 뿐만 아니라 송시열의 선택이기도 했던 것인데, 이는 송시열이 申欽과 李廷龜를 비교하며 이정구에 우위를 두었던 태도와 유사한 맥락에 놓여있다. 택당 이전에 이미 柳夢寅에게서 전후칠자에 대한 반성적 시각이 나타나고 있으며, 許筠 또한 전후칠자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후기 산문비평사에서 이러한 측면이 간과되거나 무시된 것은 그들의 주장이 이론적으로 구체성을 띠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후대의 정치적 구도와 평가가 변화한 데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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