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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문서학회 古文書硏究 古文書硏究 제35권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1 - 3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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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후기 영암지방 邑治 鄕吏들에 의해 조직된 社布稧에 대한 연구이다. 본고의 연구대상지역인 영암에는 조선시대 지방향촌사회 관련 자료가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본고의 분석 자료는 18세기 후반 영암읍 열무정 소장 사포계 문서이다. 이를 통해 영암 열무정 사포계가 어떤 배경하에 조직되고, 어떤 형태로 운영되었으며, 향촌사회사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검토하였다. 조선후기 영암을 대표하는 양반사족들은 邑治에서 조금 떨어진 郊外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15세기에 血緣과 地緣을 기반으로 한 洞契를 조직하여 촌락공동체를 운영하였다. 또 16세기에는 鄕校 이건, 鄕案 작성, 司馬齋案 중수 등 향촌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면서 유력 성씨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17세기에는 문중을 기반으로 하는 서원ㆍ사우의 건립, 직계 선조의 선양사업 등을 통해 향촌 내 양반사족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였다. 한편 영암 邑治를 중심으로 새로운 지방 세력이 등장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흔히 ‘金ㆍ河ㆍ曺’라 부르는 읍치의 향리세력이다. 이들은 17-18세기 영암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향촌활동이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직계 후손들이 영암 邑治로부터 점차 신북면ㆍ금정면ㆍ도포면ㆍ삼호면 등 주변부로 생활공간을 확대해 나가는 정도만 확인된다. 이러한 영암 읍치 사람들이 1797년에 열무정 사포계를 조직하였다. 사포계 창설 당시 계원은 읍치의 吏胥와 교외의 閑良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영암 열무정 사포계의 설립목적은 ‘영암지방이 남쪽의 보장처에 해당되기 때문에 무예를 권장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사포계 조직의 본질적인 목적은 영암 邑治 향리들의 결속력을 과시하기 위한 출범으로 평가된다. 즉 18세기 후반 영암향촌사회에는 郊外의 양반사족과 邑治의 향리가문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이 시기 郊外의 양반사족들은 문중을 단위로 하여 기존의 향촌 내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주력하였고, 邑治의 향리들은 弓術 연마를 앞세워 열무정 사포계를 조직하였다. 열무정 사포계 조직은 18세기 후반 영암향촌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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