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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39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187 - 208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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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7세기 朝鮮의 시대적 상황에서 당시 유교 지식인들의 향촌 운영⋅교화에 대한 인식을 살피는 것이 목적이다. 국가적 차원이나 지방 향촌의 측면에서 향촌 사회를 어떻게 조직⋅운영했는가? 당시의 유교 지식인들은 어떠한 사유 속에서 향촌 사회를 이해했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본고는 鄕禮라는 개념을 통해서 그 변화양상 및 특징을 살펴보고자 했다. 17세기 초반의 향촌사회는 兩亂을 겪으면서 동요가 있었지만, 유교 지식인들은 자율적으로 鄕約 및 鄕禮를 통해서 향촌을 운영하려는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17세기 후반부터 北伐論의 제기, 이에 따른 군정 및 공물문제의 사회경제정책과 상품화폐경제의 발전 등 사회경제적 변동과 맞물려 향촌 사회 운영 또한 적지 않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17세기 후반의 향촌 운영 또한 기존과 다른 양상을 드러낸다. 필자는 이러한 양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五家統 등을 주장한 尹鑴(1617-1680) 및 이와 유사한 주장한 한 李惟泰(1607-1684)를 살폈다. 또한 기존의 향촌 운영에 대한 인식과 향례의 전개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 朴世采(1631-1695) 및 그의 예학사상 등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이를 통해 五家統制를 기반으로 鄕約 및 鄕禮를 재편하여 국가의 향촌지배 강화하려했던 입장과 五家統制에 회의적 태도를 보이며 자율적 향약과 향례를 강조하는 주장을 살핌으로서 향약의 시행 주체가 지방의 유교지식층에서 지방의 목민관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17세기 후반의 향촌 운영과 향례 인식을 구체화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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