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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81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29 - 15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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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백남운(1894~1979)은 일제하 연희전문학교 상과 교수로서 일제의 정체론, 타율론적 식민사관에 정면으로 맞선 한국 학술계의 거벽이다. 이글은 동암의 생애와 학문을 이해하는데 불분명하였던 몇 가지 점들을 그간 소개된 적 없던 그의 부친 수당 백낙규(1866~1935)의 『수당선생유고』라는 문집을 통해서 살펴본 것이다. 여기서 확인한 사항은 아래와 같다. 첫째, 수당 백낙규는, 노론 기호학파의 종장으로서 위정척사의 입장에서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순절한, 연재 송병선의 핵심 제자였다. 그리하여 수당은 개화와 일본, 신학문에 반대하였고 농민전쟁에도 반대하였으며 특히 이런 행동들의 뿌리에 공리(功利), 즉 공명(功名)과 이욕(利慾)이 있다고 보고 그걸 극도로 경계한 정통 유자(儒者)였다. 둘째, 반면 동암의 외가는 원래 서울에서 활동하던 양반관료 집안인데 19세기 후반 전북 고창으로 내려갔고 그 후 문명개화, 자본주의 경제사상을 수용하여 서울의 상업중심지였던 다동(茶洞)과 전북 고창을 오르내리며 식산흥업과 신식교육에 적극 나선 개명한 집안이었다. 셋째, 7세부터 부친 수당에게 유교경전과 한학을 공부한 동암은 친가와 외가의 서로 다른 처세관, 세계관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1909년 봄 외가의 도움을 믿고 돌연 상경하여 단발 변복한 채 신학문 공부에 나섰다. 수당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지만 결국 동암은 1912년에 수원농림학교에 입학하였고 1918년에는 일본유학에도 나섰다. 넷째, 수당은 동암의 조선경제사 연구와 집필 사실을 일찍부터 알았고 그걸 여러 면에서 도운 것 같다. 그렇지만 수당은 동암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유자(儒者)의 입장에서 당시 유행하던 계급타파, 개조시대, 평등, 박애 같은 새로운 사조에 동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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