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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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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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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66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75 - 21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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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1864-1945)는 널리 알려진 역사 인물이다. 윤치호가 당시 평균보다 오래 산 윤치호의 삶이 길어지면서 그는 부인 2명과 사별하였고, 많은 가족, 친척, 친구, 지인의 죽음에 대해 애통하기도 했다. 윤치호 자신이 1945년 12월 6일 뇌출혈로 인해 81년간의 삶을 마쳤을 때, 그는 조선 말기, 대한 제국의 흥망, 일제 강점기의 전부와 한반도의 광복, 해방 공간을 모두 경험하고, 약 60년에 걸쳐 이러한 경험과 자신의 내면세계까지 일기에 자세하게 수록한 인물이었다. 조선 왕족과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며 명성황후의 암살과 장례식·제사를 경험하고, 고종과 순종의 죽음과 국장도 경험했고 이런 사건들에 대한 기록 역시 남겼다. 게다가, 일본 총독부의 한국 장례식, 무덤 문화에 관한 개입을 목격했고, 양화진 외국인 묘지와 기타 근대적 공동묘지에 대해도 알고 있었으며, 기타 동시대의 역사적 인물의 죽음과 장례에 대해도 언급했다. 그런 한편으로 그는 일본의 대한(對韓) 정책은 “오래 끌었던 나라의 죽음”의 원인으로 인식하며, 1901년에 “틀림없이 조선은 정치적으로, 지식적으로 완전히 죽어버렸다”라고 애통했다. 본 연구는 윤치호는 이러한 여러 가지 차원의 죽음에 대한 언급을 바탕으로, 그의 죽음과 장례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필립 아리에스 (Philippe Ariès, 1914-1984)의 대표적 죽음 관련 연구로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죽음”의 역사성 연구에 공헌하려고 한다. 윤치호 일기를 통해, 조선 근대화의 갈림길에 썬 윤치호가, 커다란 시대적 변화 속에서, 삶의 끝으로 불변성 강한 “죽음”에 대해 어떻게 인식한지 알아볼 시도이다. 또한 “죽음”에 불변성이 있더라도, 장례 문화는 시대 배경에 따라 당연히 바뀔 것이다. 윤지호가 기독교와 일제 통제로 인해 바꿔가는 장례문화에 대한 인식을 추구함으로써 근대화를 늘 우선한 윤치호의 조선 전통문화와의 대립에 대해도 엿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윤치호가 젊은 시절부터 조선을 지옥으로 생각했음을 일기에서 알 수 있는데, 조선이 곧 지옥이라면 사후에야 갈 수 있는 하늘은 이 조선의 대안이었다. 나이 많은 윤치호 개인에게도 죽음은 곧 더 행복한 세계의 구상이었다. 서양과 달리 기독교가 지배이념이 아니었던 조선에서, 기독교는 줄곧 윤치호에게 조선의 상태를 분석하는 틀과 문명에 대한 인식적 기반을 제공했다. 윤치호가 친일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백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황인의 해방을 기리던 시기에도 영어로 일기 쓰는 관습을 못했던 것처럼, 그는 기독교적 인식을 포기하지 못했고, 그의 우민관도 극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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