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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65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 - 3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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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산성은 경남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양보면 장암리, 횡천면 학리의 경계면인 정안산(해발 448.3m)에 위치한 둘레 약 800m의 테뫼식[山頂式] 석축 산성이다. 고려 고종 2년(1215)에 팔만대장경의 판각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정안(鄭晏)이 철마산에 성을 쌓고 노모를 모셨다는 기록과 일치하는 성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최근 실시된 정안산성에 대한 지표조사 결과에도 정안산성은 고려시대 중기에 정안선생과 정안가에 의해 축성․운영되었던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을 직접 답사한 결과 초축 성벽은 사각형의 할석을 사용하여 층단식으로 들여쌓기 하여 722년에 축조한 관문성 등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성들과 축조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또한 출토유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기와편도 8∼9세기대 유물의 특징과 부합하며, 입지와 조망환경을 통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군사적인 목적으로 축조한 성으로 판단된다. 또한 시굴조사 자료를 보면 초축 이후 2차례 정도 토심석축성(土芯石築城)으로 수축한 사실과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축조수법과 출토유물 상으로 볼 때 고려 초기에 수축(修築)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3세기 정안의 활동연대에 축성하였다는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임진왜란 때 의병에 의해 일시 사용된 성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관련 유물이 수습되지 않아 차후 정밀 조사와 검토가 필요하다. 따라서 정안이 축성하였다고 하는 정안산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으며 차후 발굴조사를 통해 그 성격과 정확한 축성 시기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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