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40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33 - 93 (6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592년에 勃發하여 7년 동안 朝鮮의 疆土를 휩쓸고 지나간 壬辰倭亂은 조선에 甚大한 被害를 남겼지만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것은 文獻記錄을 근거로 한 史實이었다. 이러한 현실은 임진왜란 당시의 戰場이 그대로 남아 우리에게 전해지는 예가 거의 없는 것도 큰 理由 중의 하나가 된다. 이번 글에서는 임진왜란 당시의 武器가 發掘調査를 통하여 直接 實物 사용이 확인되는 東萊邑城 海子와 壬辰山城의 출토 유물과 1961년 이후 발견 신고된 임진왜란과 유물을 정리하여 기록에 나타난 조선시대의 무기 체계와 비교하여 보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朝鮮 朝廷에서는 守城戰을 기본으로 하고 北方 女眞을 소탕하면서 효과를 보았던 화기의 개발에 주력하면서 임진왜란을 맞게 되었다. 동래읍성의 해자와 임진산성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는 수성전의 근본 무기라고 할 수 있는 화살촉들이 다량으로 발견되어 開戰 初期의 상황을 말해 주고 있었고 동래읍성 해자에서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鐵製 札甲과 簷冑, 槍, 長劒, 角弓 등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전장에서 확인된 무기는 『朝鮮王朝實錄』 五禮에 기록된 무기가 대부분 실제로 확인된 것으로 조선시대 전기의 기본적인 무기체계를 잘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軍事組織과 武器體系는 北方 女眞의 亂과 倭寇의 亂을 진압하면서 비교적 잘 갖추어진 것을 반증하는 좋은 자료이다. 이것은 조선 수군이 『經國大典』의 수치와 대략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동래읍성 해자와 임진산성에서는 銃筒으로 발사된 將軍箭과 玄字銃筒, 화살촉 등이 발견되어 조선시대는 활과 총통을 주로 하는 수성전이 基本 戰術로 정착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한편 발굴조사를 거쳐 확인된 현장과는 달리 우연한 기회에 地下나 海底에서 발견되어 신고된 유물은 총통류가 대부분을 차지하여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의 기본전술은 수성전이며 주력 무기는 총통을 주로하는 화기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昌寧 火王山城에서 발견된 飛擊震天雷는 발굴조사를 거쳐 확인된 최초의 예이며 영남을 중심으로 한 곽재우 장군의 활약을 증명하는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發見 申告된 銃筒이나 鳥銃 등과 같은 매장문화재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조사가 필요하며 이것은 당시 어떤 상황에서 조선군이 총통을 사용하였는지 그리고 조총을 어떻게 開發하여 實戰에 사용하게 되었는지를 밝혀줄 수 있는 資料가 될 것으로 判斷된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에 사용된 무기는 육상에서 치러진 전투에서는 勝者 쪽에서 어떤 식으로건 전장이 치워져 전장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낮지만 南海 바다 일원에서는 다수의 임진왜란 당시 사용한 화기류가 발견되고 있다. 이것은 남해안 일대에서 벌어진 해전의 결과가 해저에 남아 발견되는 것인데 해저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에는 별다른 방해는 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바다에서는 임진왜란 관련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육상 보다는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유물이 신고되면 유물이 출토된 海域 일대를 정밀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과 육상에서도 임란 등의 전쟁과 관련된 유물이 발견되면 그 일대에 대한 全面的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 싶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53)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