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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20권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87 - 227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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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녹생(田祿生: 1318-1375)은 자가 맹경(孟耕), 호가 야은(壄隱)으로 고려후기의 문신이다. 그는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 예컨대 이제현, 이색, 이집, 백문보, 정몽주, 권근등과 광범위한 교유를 맺고 그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당대의 사대부들이 전녹생을 따랐던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대쪽 같은 성품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신에 있었다. 전녹생은 충혜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환로에 오른 뒤 줄곧 정치·행정의 폐단을 개혁하는 일에 앞장섰다. 가령 염철별감(鹽鐵別監)의 폐단 건의, 왜구 방어에 대한 폐단 건의, 북원(北元)의 배척과 이인임에 대한 처단을 논하는 등 간관(諫官)으로서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1375년(우왕 1)의 북원 배척과 이인임 주살 건의는 이첨(李詹)과 전백영(全伯英) 등이 주도한 것인데, 전녹생은 박상충(朴尙衷)과 함께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유배 도중 사망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의 삶은 불의에 대한 저항과 부정·부패에 대한 시정으로 요약될 수 있을 만큼, 그는 평생을 올곧게 살아가려 노력하였다. 고려후기를 대표하는 수많은 사대부들의 시문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남긴 삶의 행적은 실천하는 사대부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라 평가할 수 있으며, 또한 그의 각종 시문을 통해서도 사대부가 지향해야 할 지조와 절의의 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전녹생의 절의 정신과 사대부로서의 지향을 고찰하면 14세기 정치, 학문, 문학 등 제 방면을 이끌었던 사대부 지식인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전녹생의 문집인 『야은일고』에는 총 9편의 시와 4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그중 시는 명승지의 풍광을 읊은 것이 5수, 특정 인물에게 주는 시 2수, 개인의 감회를 읊은 시 1수, 영물시 1수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풍광을 읊은 시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동국여지승람』에서 뽑은 시가 많기 때문이다. 산문으로는 비답(批答) 1편, 소(疏) 2편, 계사(啓辭) 1편 등이다. 전녹생 시의 대체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사대부로서의 양심과 절의를 다짐하는 것, 목민관으로서 선정에 대한 다짐과 애민정신이 발현된 것, 귀거래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 것, 영물을 통해 시인의 심회를 감각적으로 나타낸 것,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것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전녹생의 산문 작품을 살펴보면, 비답은 「이색의 좌대언 사양에 대한 불윤의 비답[李穡辭免左代言不允批答]」이고, 계사는 전라도 안렴사로 있을 때 왜구 방어의 폐단을 간언한 것이며, 소 2편은 각각 염철별감(鹽鐵別監)의 파견 중지를 청한 것과 목인길(睦仁吉)의 파면을 청한 것이다. 이들 작품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4편 모두 간관 또는 국가의 중신으로서 나라를 염려하고 백성을 위하는 경세제민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이상을 통해 전녹생의 시문은 철저하게 사대부라는 그의 신분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전녹생은 삶의 구체적 행적에 있어서나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기록한 문학 작품을 통해서나 동일하게 시종 일관 사대부가 가져야 할 경세제민의 자세와 지조, 절개, 의리 등을 견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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