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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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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역사 여성과역사 제23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7 - 6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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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여성들은 혼인 후 거주지의 변화에 따라 정체성의 변화를 겪었다. 혼인 후 여자들이 자신의 집에 거주할 때는 딸로서 살았고 점차 남자쪽으로 거주지가 바뀌면서는 며느리로서 생활했다. 경주 양동마을은 본래 사위에서 사위로 이어지는 마을이었으나 손소와 손중돈, 외손 이언적이 출현하면서 손씨와 이씨의 부계마을을 형성했다. 이 과정에서 여자들은 ‘딸에서 며느리로’ 정체성의 변화를 겪었다. 유복하의 딸 유씨와 손소의 딸 손씨는 딸로서 살았다. 혼인 후 자신의 집에서 살면서 남편 손소를 지원하고 아들 이언적을 양육했다. 반면 손중돈의 후처 최씨와 이언적의 처 박씨는 며느리로 살았다. 이들은 남편 집으로 와서 생활했다. 최씨와 박씨는 며느리로서 시집에서의 자신의 위치 확보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박씨는 남편 이언적의 서자가 나타나자 적극적으로 양자를 들여 적처(嫡妻)로서의 입지를 확보했다. 물론 이들에게도 딸 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씨와 박씨는 모두 자식이 없었는데, 친정 질녀를 수양딸로 삼아 손자 또는 양자와 혼인을 시켰다. 자신의 재산이 친정 집안 혈족에게 상속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본다면 딸보다는 며느리로서의 역할에 더 집중했다. 조선에서 여자들이 딸로서 살 때 오히려 권리행사나 역할에서 다양성이 보이지 않는다. 유씨나 손씨는 재산 운용, 집안 관리에서 역할이 크지 않다. 반면 최씨나 박씨는 집안 운영이나 재산권 행사에 더 적극적이었다. 며느리로 사는 것이 오히려 집안에서 더 중심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종부(宗婦)에게는 많은 능력이 요구되었는데, 그에 따라 더 많은 권한이 오기도 했다. 조선에서 여자들이 딸에서 며느리로 정체성 변화를 겪은 것이 여자들에게 반드시 불리했던 것 같지는 않다. 딸로서의 재산권은 축소됐을지 모르지만, 며느리로서의 권한 행사 영역은 더 커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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