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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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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역사 여성과역사 제27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39 - 16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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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태후는 어린 아들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였다. 만월태후 섭정기에는 많은 반란이 있엇다. 따라서 만월태후의 섭정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은 왕권의 안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왕위를 위협하는 세력으로부터 통치의 정당성과 왕권의 정통성을 표방해야만 했다. 만월태후는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실권자와의 연대를 추진하였고, 외부적으로는 당과의 외교를 통해 신라 내부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봉덕사와 봉덕사종, 즉 <성덕대왕신종>은 섭정인 만월태후가 통치의 정당성과 왕권의 정통성을 주창하기 위한 기제였다. <성덕대왕신종>의 명문에 따르면, 태후가 은혜로우므로 백성을 교화하고, 父子의 효성을 장려하셨다고 하였다. 만월태후가 <성덕대왕신종>의 완성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만월태후는 <성덕대왕신종>의 완성을 통해 성덕왕-경덕왕-혜공왕에 이르는 왕통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그럼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내세우고자 하였다. 『삼국유사』에서는 만월태후와 경덕왕이 힘들게 아들을 얻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본래 여자인 혜공왕이 남자로 태어난 것이므로, 돌날부터 왕위에 오를 때까지 항상 부녀가 하는 짓을 했다고 한다. 이는 나라에 변고를 가져왔고, 결국 혜공왕은 선덕왕과 김경신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하였다. 역사 기록에서 만월태후와 혜공왕은 패자이고, 선덕왕과 원성왕은 승자이다. 승자의 시각에서 혜공왕은 자격이 없는 왕이어야 했고, 왕위 찬탈은 신라를 위한 정당한 구국의 행위여야 했다. 섭정기의 만월태후는 반란세력을 진압하는 한편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실권자와의 연대를 추진하였고, 외부적으로는 당과의 외교를 통해 신라 내부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또한 만월태후는 경덕왕의 유지를 받들어 <성덕대왕신종>을 완성하였는데, 이는 섭정인 만월태후가 통치의 정당성과 왕권의 정통성을 주창하기 위한 기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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