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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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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역사 여성과역사 제27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67 - 19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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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는 고려 말 신진사대부의 성리학 수용으로 그 단초가 보이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본격화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데 고려시대에는 전 시기에 걸쳐 절부라는 존재가 보인다. 본고는 이 절부와 고려 말 열녀의 관계를 보고자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수절이 의무가 아니어서 절부는 누구의 강요가 아닌 여성자신의 선택이었다. 절부들은 장성한 아들이 있어도 호주로 파악되었으며 시부모를 봉양하고 아이를 양육하며 집안의 어른으로 살았다. 또한 불교에 귀의하여 제2의 인생을 살기도 하였다. 이처럼 고려의 절부는 남편 사후 신체를 훼손하거나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던 조선의 열녀에 비해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그 이유는 절부가 기반한 사회구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즉 고려의 비부계적인 가족제도, 여성 호주, 자녀균분상속, 부처가 동등하게 어버이로서 여겨졌던 사회적 특성 등이 당당하고 주체적인 절부를 낳았다 하겠다. 그러나 고려 말 성리학의 수용으로 삼종지도, 일부종사 논리가 등장하며, 수절 관념의 변화와 함께 절부도 달라진다. 일부 선진적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여성들은 강력히 재혼을 거부하며 시가로 도망하여 수절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그러면서 서서히 ‘조선의 열녀’가 시작된다. 절부는 남편에게 정절을 지켰다는 면에서 넓은 의미의 열녀라 할 수 있다. 절부는 고려가 낳은 열녀이며, 열녀는 곧 사회와 시대의 산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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