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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역사 여성과역사 제28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53 - 174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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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장렬왕후(莊烈王后)의 인조~현종 대 삶과 위상 변화를 밝히려는 시도이다. 이를 통해 17세기 조선왕실이 재정립했던 정통성과 권위 확보에 그의 존재가 어떤 작용을 했는지 살펴보았다. 장렬왕후는 국가중흥과 왕실의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인조의 계비로 간택됐다. 그러나 왕비 시절 간질에 걸렸다는 표면적 이유와 인조가 추진한 왕세자 책봉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별궁에 유폐를 당하여 지위가 하락했으나 세자와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후 장렬왕후는 사망한 인조를 위한 망곡례(望哭禮)를 거행해 위신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효종 역시 권위가 실추되었던 장렬왕후를 예우하는 태도를 취하며 왕실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왕실 사람들이 장렬왕후의 존숭책례를 무시하자 효종은 엄한 처벌을 내렸다. 효종은 장렬왕후의 병증을 집중 치료하며 어머니에게 안정적인 새 거처를 제공했다. 효종은 북벌정책의 일환이었던 관무재(觀武才) 부활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장렬왕후의 목욕장소를 빌미 삼는 신하들을 처단하면서 논점을 흩트려버렸다. 이를 계기로 효종의 주도 하에 대외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관무재가 시행되었다. 현종 대 조선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대비가 입을 상복(喪服)을 논의했다. 첫 번째 논쟁에서 현종은 효종을 중자로 위치시킨 1년 주장 측에게 의지하여 복상을 결정했다. 반면 현종은 효종비의 사망으로 두 번째 예송을 직접 진행했다. 현종은 의례를 변경하는 방법에 복상당사자인 장렬왕후의 어머니 정체성을 이용했다. 현종은 모든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중자부(衆子婦)의 9개월이 아닌 장자부(長子婦)의 1년으로 결정해 왕실의 정통성 확보에 성공했다. 현종 사후에도 장렬왕후의 상복 논의가 있었으나 종통이 확고했으므로 큰 문제로 불거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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