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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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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문학회 국문학연구 국문학연구 제36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233 - 254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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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원규(卞元圭, 1837~1896)는 19세기 유명한 역관 문인이다. 그간 변원규의 외교와 무비 강화 등 방면에서의 공로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연구 성과가 있었지만 정작 그의 가계와 생애에 대한 연구는 별로 이루어진 바가 없다. 본고는 『밀양변씨효량공파보』와 조선시기 문헌 자료들을 토대로 변원규의 생애를 복원하고 중국 사행 시의 일부 교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변원규의 6대조는 중개무역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았던 왜학 역관 변승업(卞承業, 1623~1709)이다. 변원규는 19세에 역과 식년시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사역원 정, 오위장 등 벼슬을 하였고 정3품 당상역관의 자리에 올랐다. 1880년에 재자관의 신분으로 천진에 가 이홍장(李鴻章)과 회담하고 무기 제조술과 군사 훈련을 배우는 장정(章程)을 상의한 공로를 인정받아 적성 현감으로 임명되었다가 다시 가평 군수의 관직을 받았다. 그 이후 또 평산부사(平山府使),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에 임명되었고 외교에서도 계속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현재 기록으로 보아 변원규는 중국에 적어도 10회 이상 갔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1881년의 사행 중에 영선사(領選史) 김윤식(金允植, 1835~1922)과 깊은 인연을 맺었을 뿐 아니라 종사관 윤태준(尹泰駿, 1839~1884), 백낙륜(白樂倫) 등과도 친분을 맺었다. 또 중국인 유지개(游智開, 1816~1899), 공헌이(孔憲彛, 1808~1863), 동문환(董文渙, 1833~1877) 등과도 교유하였고 유지개의 문집인 『장원시초(藏園詩鈔)』를 조선에 가져와 간행하기까지 하였다. 이들과의 교유는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지만 문화적 교류를 수반하였고 또 이런 문화적 교류가 쌍방향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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