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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문학회 국문학연구 국문학연구 제36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19 - 15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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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시대에 중앙조정과 지방의 관청(官廳)에서 제작된 제명기(題名記)를 대상으로 그 창작 전통과 경향을 당시의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읽어내려는 시론(試論)이다. 사대부 관료들의 사적(私的) 연대인 계회(契會)와 달리, 제명기는 관청의 전․현임 근무자들의 공적 기록이자 관료로서의 집단적 정체성이 강조되는 자료로서 주목을 요한다. 조선 개국 이후부터 후기까지 창작된 제명기의 통시적 변화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조선 전기에는 고려시대의 유제를 극복하고 『경국대전』으로 표상되는 조선적 정치질서의 성공적 이식을 위한 질서의식이 강조된다. 학업과 인품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 인재상을 서술함으로써 조선의 인선(人選)이 엄밀하고 정확함을 과시하는 한편, 이미 조선의 정치가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였다는 자부심을 표출하였다. 특히 사대부 고위 관료들이 하급 관원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서는 후인(後人)들의 역사적 평가를 엄중히 인식하며 왕화를 보좌한다면 훗날 승진을 통해 그것을 보상받을 것이라고 독려함으로써 신진 관리들의 자기통제와 성장을 추동하는 계서적 질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병란을 거치며 인멸된 기록을 복구하고 재구축해야 한다는 의식이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한편 그 보수(補修)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해두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중앙관청의 정비가 일단락됨에 따라 지방 통치로 시선이 전환되고 있다. 여기에는 중앙조정과의 관련 속에 수령들이 지방에서 조정의 교화를 온전히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정치적 사명감이 강조되어 있다. 조선 전기까지의 제명기 창작이 주로 해당 관청에 근무하게 된 개인들이 필요성을 자각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조선 중기 이후 지방에서의 제명록 제작은 향리가 축적해온 구안(舊案)의 관행을 전면 수정하여 정보의 정확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지방 통치의 준거를 확보하려는 의지에서 제도적․본격적으로 제작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밖에 조선 후기의 제명기는 조선 전기와 중기 제명기의 창작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경향이 현저하되, 창작의 주체와 수신의 대상 모두 사대부에서 중인층으로 확대되었다. 제명기는 위계적 질서에 입각한 정명 사상을 바탕으로 ‘정치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고, 각 개인이 정해진 위치에서 주어진 직분을 다함으로써 정치적 질서가 완전하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제명기는 제작 자체가 하나의 제도이자 문학적 결과물로서 조선이 새로운 정치적 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하게 산생될 수밖에 없었던 장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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