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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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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86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219 - 242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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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 요소는 차이다. 좋은 차를 얻기 위한 노력은 최고의 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장인들이 사용했던 제다법의 변천사에 드러난다.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는 대흥사 승려로, 차의 이론을 정립하여 초의차(草衣茶)를 완성함으로써 대흥사(大興寺)에 전해진 사원차(寺院茶)를 복원했을 뿐 아니라 민멸 위기에 처했던 차문화를 중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관점에서 본 논문을 개진하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 후기는 차문화의 민멸기로 차를 아는 이가 드물었고 일부 호사가(好事家)들만이 중국에서 들여온 차를 향유했던 시기이다. 그러므로 차를 만드는 방법은 시대의 흐름을 등진 채 고려시대 유행된 단차의 변형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떡차가 생산되었으며 이는 식체, 이질, 감기약으로 사용하는 약(藥)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 후기는 고려시대처럼 난만한 차문화를 향유하던 시대와는 다른 차(茶)의 유형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혹자는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승려들에게 차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며 차는 구증구포(九蒸九曝)나 삼증삼포(三蒸三曝)로 만든다는 얘기가 거론되어 혼란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 다사(茶事)를 주도한 것은 소수의 사원 승려들이었기에 다산에게 차를 배웠다는 설은 재고되어야 한다. 한편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 사원 차를 복원하여 초의차를 완성함으로써 경향의 사대부들에게 차의 가치는 물론 우리 차의 우수성을 알려준 것은 초의의 공이다. 이뿐 아니라 초의는 경화사족들과의 교유에서 그가 만든 초의차를 통해 깊이 있는 유불 교유를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초의에 의해 차의 본연의 가치를 드러내 그와 교유했던 이들의 심신을 안정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초의차의 특징은 심폐를 시원하게하며 답답한 울화나 번뇌를 씻어 주는 차의 원형적인 가치를 지닌 차였다. 이는 초의의 노력으로 집대성된 것인데 그 완성 시기는 대략 1840년 이후라 여겨진다. 물론 차문화의 흥망성쇠에 따라 차를 만드는 방법은 병다(餠茶: 떡차)에서 연고차(硏膏茶, 혹은 단차)로 다시 연고차에서 산차(散茶:잎차)의 시대로 발전되었지만 시대마다 다른 차의 특성을 보인다. 이는 차가 시대성과 사람들의 기호, 차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의차(草衣茶)는 초의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차를 즐기는 이들의 기호와 열의가 함의된 차였던 것이다. 이런 특징을 지닌 초의차의 제다법(製茶法)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대흥사의 다풍(茶風)으로 면면이 이어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미래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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