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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각사상연구원 대각사상 대각사상 제25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03 - 141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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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근․현대 차인 응송 박영희(應松 朴暎熙, 1892∼1990)를 집중 조명하였다. 그의 성장배경과 대흥사 주지 시절, 그리고 초의 의순(草衣 意恂, 1786∼1866)의 사후 법계를 받은 종법손으로서 다풍을 이은 전승맥락이 주요 고찰 내용이다. 응송 영희의 삶을 통해 그가 근․현대 차문화 부흥기를 유도하고 그 시대정신을 통해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차문화사에 끼친 영향을 정리․분석하였다. 응송 영희는 초의 의순의 법제자인 범해 각안(梵海 覺岸, 1820∼1896)의 제자 원응 계정(圓應 戒定, 1856∼1927)에게 사교를 공부하여 법제자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 전국학생연맹 동부책임자로 ‘대한독립만세’라는 혈서를 쓴 기를 세우고 행진대열을 선도했고,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졸업, 1920년 왜병 토벌에 나섰다가 교전 중 중상을 입었다. 만해 용운(萬海 龍雲, 1879∼1944)을 중심으로 만당을 결사,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3개월간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였다. 17세에 대흥사에서 머리를 깎고, 그로부터 다각(茶角)생활 8년을 지냈다. 사찰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주지 20여 년을 거치면서 식후 하루 대여섯 차례씩 뜨거운 차를 손수 우려 마셨다. 100세까지 천수를 누릴 수 있었던 묘약은 바로 차였다고 회고하는 정통한 차인이었다. 대흥사 들머리 백화사에서 초의 의순의 다풍을 계승하고 전승하는 역할은 물론 대둔사의 대표 찻독 역할을 하였다. 한국의 차문화 유적지에서 차의 성지라고 불리는 일지암의 터를 찾아 복원사업을 하였으며 그로 인해 차문화의 보급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더욱이 일본의 한국 문화 말살정책에도 초의 의순의 󰡔다신전󰡕, 󰡔동다송󰡕의 차의 고전을 보존하였다. 이것을 번역하여 전국적으로 차문화의 부흥을 이끌고 다서를 공부하여 초의 의순의 차정신을 숭앙하게 하는 규범으로 만들었다. 사원차와 초의차를 위시한 전통차 제다는 물론 다풍의 전수와 전승을 위한 행보는 현대로 이어졌다. 󰡔동다정통고(東茶正統考)󰡕를 통한 차문화사 정리와 연구는 후대 차문화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선시, 차시를 통한 승가의 전통과 초의의 차정신 계승은 근․현대 한국 차문화 전승의 흐름과 지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현대로 이어지는 차문화 보급과 확산의 양상이다. 초의 의순이 쓰던 것으로 추정되는 옹기 주전자와 손때가 묻은 고려청자 잔 두어 점이 전부였던 응송 영희의 차살이는 후대 차인들의 검박한 차생활의 전범이 되었으며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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