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44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379 - 400 (2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北魏시대(386-534년)의 중국에서 선비들을 불교의 기본이념과 풍수지리에 근거하여 석굴을 조성하였다. 초기에는 인도석굴의 조경방식을 도입하였으나 점차 이로부터 탈피하여 독창적인 석굴로 발전시켰다. 2001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운강석굴(云冈石窟)은 북위시대의 예술적 감각이 결합되어 웅장하면서도 유려하다. 운강석굴은 북위(北魏) 中期(453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낙양(洛陽)으로 수도를 천도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공사가 완성되었다. 무엇보다도 운강석굴은 인도불교를 도입하여 중국문화와 사상을 결합시킨 점이 돋보인다. 석굴의 초기 모습은 인도적인 색채가 강했지만, 중후기에는 황권사상과 결합되어 수골청상(瘦骨淸象)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2000년 11월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용문석굴(龙门石窟)은 운강석굴의 풍모를 이어받아 중국식으로 토착화되는 전환점에서 조성되었으며, 북위시대 효문제(孝文帝) 때 낙양으로 천도(493년)한 후에 동위(东魏), 북제(北齐), 수(隋), 당(唐) 등 400여년을 거치면서 당나라 때에 가장 번창했다. 무엇보다도 용문석굴은 북위시대와 당나라 때에 황제나 귀족들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황제나 귀족들의 의지나 행위를 나타내고 있으며 전형적인 황가의 품격을 지니고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석굴은 인도석굴 양식을 도입하여 발전하였기 때문에 향후 한국석굴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나한조상(羅漢造像)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나한조상이 많이 조성되었다. 이는 바로 중국에서 ‘인간불교’를 추진한 결과이다. 그때부터 나한은 인정미 넘치는 이미지의 상징이 되었다. 따라서 중국의 불교는 불상(佛像)에 인간을 적극적으로 반영시켰다. 아울러 중국석굴은 한국의 대표적인 석굴인 석굴암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국 석굴의 도입과정과 토착화를 연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본 연구는 운강석굴과 용문석굴의 배후사상 중에서 풍수지리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풍수지리에 관한 전문가들의 견해가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공통분모의 도출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위시대의 석굴들은 대부분 풍수지리상으로 길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풍수지리의 관점에서 석굴의 구조를 집중적으로 고찰하는 연구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5)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