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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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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31호
발행연도
2005.1
수록면
153 - 18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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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시대의 성균관에서 국왕에 대하여 행하였던 각종 예찬과 행례 방법들을 연구하였다. 이런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에, 최초로 소개하는 것 자체가 성균관 연구사에 있어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성균관은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수준의 교육기관으로서 각 분야의 엘리트 충원과 양성, 왕권의 강화, 사신과의 외교, 성현들에 대한 제사, 유교라는 지배 이념과 문화의 수호지 등의 매우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성균관에서는 관원들과 유생들이 국왕의 여러 가지 하사(下賜)나 은전(恩典)에 대해 사은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끊임없이 성균관 존립과 국가를 위해 국왕에게 가요(歌謠)나 송가(頌歌) 및 전문(箋文)을 바치거나 하례(賀禮), 지영(祗迎), 지송(祗送) 등의 방법으로써, 국왕의 성대한 덕을 예찬하거나 또는 국왕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는 일을 해야 했으며, 나라에 경사가 있으면 언제든지 성균관에서도 국왕에게 축하 전문을 올리는 것이 상례였다.이런 일은 비단 성균관에서만 열심히 행하는 것은 아니었고, 또 성균관에서는 단체로 또는 개인적으로 아니면 대표자가 나서서 언제나 형식적으로라도 해야 하는 일종의 의무적인 과제로 수행되었다. 그 방법으로써는 가요(歌謠), 전문(箋文), 지영(祗迎), 지송(祗送), 알현(謁見) 등의 몇 가지 방법이 활용되었다.가요는 국왕의 치적이나 성대한 덕을 예찬하는 노랫말이며, 일정한 가사와 노래하는 형식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가요청’이라는 관청을 거쳐야 성립되는 것이었다. 또 전문은 각종 하사나 은전을 베풀어 준 것에 대해 반드시 사육체(四六體)의 문장을 지어 국왕의 덕을 예찬하며 사은을 표하는 방법이었다. 한편, 지영이나 지송은 국왕의 행차 때 일정한 행렬을 준비하여 환영이나 환송을 행하는 예법이었다. 그리고 또 알현은 직접 국왕을 뵙고 예를 표하는 방법이었다.이렇게 함으로써 국왕과 성균관은 군신관계로서의 돈독한 입장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국왕은 성균관을 통제하고 성균관은 국왕을 의지하며 지속적으로 공존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항상 군신간계라고 할지라도 완전한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었고, 또 성균관 유생들이 진심으로 국왕에 대한 예찬을 언제나 즐거워하며 수행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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