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67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87 - 102 (1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조선시대에 성균관에서는 재학 중인 유생들을 대표하는 장의(掌議)라는 직함이 있었다. 유생들의 자치기구인 재회(齋會)라는 학생회가 있었으며, 이 학생회의 전체회의를 통해서 선출된 장의는 동재장의와 서재장의 2명의 복수 제였다. 그 이유는 1인체제의 독단적인 운영을 막기 위해서였다. 춘추석전을 기준으로 교체하는 기한을 삼았으며, 국왕의 특별한 교지가 있으면 즉시 교체하였다. 성균관 유생들뿐만이 아니라 4학 유생들, 그리고 전국 각지의 유생들을 대표하는 성균관 장의는 매우 영광스러운 위치였다. 아직 벼슬하지 않은 전국 유생들의 상소는 모두 성균관 장의의 근실을 받아서 승정원에 올려 보내야 했고, 장의가 성균관 유생들을 감독하고 통솔하고 잘못된 것들을 시정하는 일도 처리했다. 그래서 자치적으로 유생들을 벌주는 유벌은 장의가 먼저 발론을 시작해야 했으며, 유생들의 이름을 유적에서 삭적하는 일이나 복적하는 일도 전권을 가지고 담당하였고, 새로운 거재유생을 받아들이고 내보내고 하는 일도 장의가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 성균관 장의는 성균관뿐만이 아니라 전국 유생들을 대표하여 국왕을 자주 접견하였고, 국왕에게 올리는 전문과 가요도 책임을 졌으며 국왕 앞에서 낭독하는 일까지도 맡았다. 뿐만 아니라, 성균관 장의는 각종 의례의 진행과 안내, 국왕이나 왕세자들의 알성 행사나 대사례 행사 때에도 큰 책임을 맡았다. 중국 사신들의 영접이나 배웅, 교관과 유생들 상호간의 상읍례, 식당출입 질서유지, 국왕의 궁궐 밖 행차 시 지영이나 지송을 하기 위한 성균관 유생들의 인솔과 통솔도 성균관 장의의 역할이었다. 그러므로 성균관 장의의 영예는 국가와 성균관이 인정하고 각별히 예우하는 것으로서 성균관을 책임진 대사성 못지않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2)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