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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31호
발행연도
2005.1
수록면
129 - 152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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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세종시대의 왕자 교육에 관련된 내용이다. 세종은 태종의 셋째아들로서 이미 맏형이 세자로 있는 상황에서 왕위계승의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세자로서 왕위를 준비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好學으로 인해 오히려 왕위계승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성리학이라는 신학문의 탐구를 통해 학문을 닦을 수 있었다. 짧은 2달여 간의 세자 기간 동안 본격적인 왕세자 수업을 받지는 못했으나 이미 16세 때 대군이 되면서 성리학을 착실히 익힌 李隨을 맞이하여 훌륭한 학자로서의 소양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이다.이를 기반으로 해서 세종은 자신이 왕위에 있으면서 왕세자 교육의 틀을 어느정도 갖추었다. 조선초기의 제도는 대체로 초기에는 태종 때에 그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하여 세종 때에 어느 정도 정비가 되며, 이후 성종 때까지 수선과 보완이 이루어졌다. 왕세자 교육에서도 세종 때에는 集賢殿을 중심으로 교육되는 등 제도적인 정비가 이루어진다. 왕세자 교육을 위해 마련된 書筵에서도 고려때의 지배원리를 대체해서 등장한 성리학과 관련된 서적들이 주로 교재로 채택되었다. 국왕의 교육을 위해 마련된 經筵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왕세자교육에서도 성리학의 중심 경전인 四書와 이에 앞서 공부하는 孝經이나 小學 등이 주목되었다. 한편 조선초기에는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려는 목적에서 제왕학을 위해 저술되었던 大學衍義와 秦漢에서부터 明나라 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制誥詔勅을 편찬하여 요약한 絲綸要集 등을 강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왕자교육의 틀은 세종대에 크게 정비되어 이후 세자시강원으로 이어지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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