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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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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55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401 - 438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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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무속의례가 국행의례를 계기로 취했던 토대마련은 시작부터 유교의 명분론으로부터 거센 배척에 직면했다. 이러한 즉각적인 영향력은 고려조 무속에 대한 비판과 수용을 병행해갔던 상황과는 판이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조선전기의 유교가 무속에 취했던 정책적인 탄압은 인조에 이르면서 국행의례에서 무속을 철저히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속의례가 내행을 통해서 의례행사를 지속했다. 하지만 무속의례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외부행사는 철저하게 체계적으로 근절을 진행했다. 이를 위해서 유교가 취했던 명분론에는 화복귀신론의 천관념과 주자학의 예제라는 논지를 통해서 무속에 대한 비판과 배척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유교는 주자의 귀신론을 통해서 고려조까지만 해도 ‘화복’의 의미를 주재자가 단지 자신의 도덕가치의 실현이라는 논점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다. 이로부터 조선전기에 이르면서 화복은 궁극적으로 자기자신이 도덕적 가치의 판단을 통해서 취할 수 있는 자취(自取)적인 것임을 밝혔다. 따라서 조선조 이래로 화복을 부여하는 주체는 하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개별자 자신의 도덕적 자각의 여부에 따라서 결정된다. 유교의 천관념에 대한 다른 하나의 주제로서 주자의 귀신관이 있다. 주자는 귀신이란 이른바 음양의 기가 굴신왕래하는 조화의 자취라고 정의한다. 고려조에 귀신과 관련된 세밀한 언급은 없고, 다만 아직 온전하게 그 의미를 정초하지 못한 채 언급함으로써 조정대신과의 갈등과 반목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조선조에 주자학의 정착이 점차 현실화 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진전을 보이게 되자 그 동안 무속에서 발생된 지속적인 사회적 폐단을 근절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했다. 고려조 유교가 예제의 명분론으로 제시했던 논거의 한계로부터 조선조에는 주자학의 토대마련의 성과로서 특히 「주자가례」의 유입은 무속을 탄압하는데 있어서 체계적인 명분론의 확립하는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전통적 계승차원에서 무속의례를 인정했던 왕실과 주자학의 새로운 예제를 관철시키려는 유교의 명분론과의 대립이 격심해지면서 일부에서는 총사마저 소각하는 반론을 제기했고, 인조시기에 무속은 국행의례는 전면 폐지되었다. 하지만 무속의 역할론에 대한 수요는 내행의례를 통해서 지속되었고, 또한 「경국대전」을 법제화해서 무당에게 악공이나 환자치료를 돕는 직능을 부여했다. 여기서 유교의 철저한 명분론은 무속을 수용함으로써 이른바 오무와 호무의 갈등과 한계를 노정했다. 이처럼 유교가 무속과의 길고 힘겨운 동행을 지속했고, 무속이 국행의례의 주체인 역할에서 배제된 후 유교의 끝없는 시련과 탄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각자의 정체성에 대한 지나친 확신과 상대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의 부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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