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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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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40호
발행연도
2007.1
수록면
231 - 26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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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조 초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지만 역사의 진행에 따라 점차 본격적으로 거론되다가 급기야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 핵을 이루었던 도관(道觀), 곧 ‘삼청전(三淸殿)의 건립 배경과 터의 위치’에 관해 주로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고찰한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조선조 초중기 도교의 종교 사상적 특성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 삼청전을 건립하게 되었던 정치문화적 배경이 어떠한가를 고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필자의 고찰에 의하면, 조선조의 삼청전은 기존의 견해에서처럼 태조가 한양에다 새로운 소격전(昭格殿)을 건립하면서 그 안에다 애초부터 두었던 것이 결코 아니다. 조선조의 삼청전은, 태종이 창덕궁 후원에다 설치하였던 제성전(祭星殿)의 삼청 성신상(星辰像)을 시발로 하며, 후에 태종이 그것을 기존의 소격전 내로 이전하여 추가로 설치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성종조에 이르러서는 소격서(昭格署) 밖의 별도의 장소에다 새로운 삼청전을 건립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하여 삼청 성신에 대한 초제(醮祭)를 올리게 되었다. 이른바 ‘소격서 혁파’의 주 대상이 된 것은 바로 이 삼청전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조 문인들의 글에서 ‘소격동(昭格洞)’이 ‘삼청동(三淸洞)’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나타나는 것도 위와 같은 변화에 따른 것이다.성종조에 새로 건립한 삼청전이 있던 터로 추정되는 곳은, 지금의 청와대 뒷산인 북악(北岳)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세 봉우리 가운데의 중봉 즉 백련봉(白蓮峯)의 기슭이다. 이 터에는 지금 군부대가 들어서서 청와대와 서울특별시를 보위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따라서 삼청전 옛 터는 훼손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간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의 지세와 경관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이곳을 출입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데다 개인의 역량에도 한계가 있어, 필자는 아직 삼청전 옛 터와 관련된 어떤 구체적인 실증물을 찾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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