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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용암사지 마애불의 사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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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storical Interpretation of Yong-Am-Sa-Ji Maebul in Korea - Cross-World Identification of Korean Maebul -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40호
발행연도
2007.1
수록면
103 - 133 (31page)

이용수

표지
월출산 용암사지 마애불의 사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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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의 능선에 위치한 용암사지 마애불은 8m 규모의 한국 大佛이다. 고대문화의 통구가 된 영산강이 바다와 만나는 영암의 포구를 응시하며, 그 주제는 고전적인 偏斷右肩의 항마촉지인좌상이다. 석굴암 본존이 대표하는 한국에서의 편단우견 항마촉지인상은 8세기 이래 풍미하였다. 그러나 용암사지 마애불의 신체비례는 그 원형이 석굴암 본존과 다르며, 중국화 된 불상이기 보다 비례에 따른 헬레니즘계 미술양식의 영향이 더 컸다고 판단된다. 마애불 좌우에 산지의 경사면을 살려 배치한 쌍 탑은 한국마애불에서 흔히 보이지 않는 형식이지만 동일한 패턴이 인근의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불에 보인다. 형식은 기능을 따르고 동일 패턴은 지향하는 바가 유사할 것이다. 신라하대 정치 경제의 패권을 쥔 지역에 마애불과 더불어 쌍탑을 배치하면서 새 패턴을 만든 것은 새로운 불국토를 상기시킨다. 이는 경주를 응시하는 신라 통일 직후의 마애불 유형을 통해 그곳을 불국토로 만들었던 관념을 확장한 것이다. 나아가 신라하대 영암출신의 禪僧 도선국사가 선종과 풍수지리를 종합하여 경주가 아니지만 비보사찰을 만들면 吉地가 된다는, 호족이 선호한 裨補思想을 영향력 있게 펼쳤던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용암사지 마애불은 확립된 전통에 관한 새로운 국면을 만들고 예술적 변화를 명시한 의미 있는 형식이다. 9세기에 크게 성장한 호족은 경주 중심이 아닌 자신의 거주지가 불국토가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고, 용암사지 마애불은 그들의 의지를 예술로 현실화한 한국의 大佛이다. 따라서 용암사지 마애불은 이들의 기존의 보수적 가치관을 벗어난 세계관을 암시하며 한국 마애불에 대한 신앙을 확산시킨 의미 있는 마애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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