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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10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265 - 316 (5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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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洛陽 遷都 이전 제작된 3基의 墓誌를 분석하여 정형화된 北魏 묘지 출현의 과정을 복원하고 究明하는 것을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북위에서 제작된 묘지가 南朝에서 제작된 그것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를 보임에 의해 ‘南朝的墓前石刻, 北朝的墓誌銘’이라는 견해가 제출되기도 하였다. 또한 일찍이 일본학계와 중국학계에서도 북위에서 묘지가 완성되고 전파되었다는 주장이 개진되었다. 그러나 천도 이전 북위 묘지를 살펴본 결과 북위 안에서 자체적인 발전에 의해 묘지가 정형화된 정황을 발견할 수 없었다. 洛遷 이전 비교적 완비된 묘지로 거론되던 <元理墓誌>는 僞刻이 거의 확실하였고, 銘辭를 보유하고 있어 천도 이전 정형화된 묘지로 이해되던 <劉賢墓誌>는 紀年 比定에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孝文帝 太和 19년(495) 南齊로부터 망명한 王肅에 의해 남조의 묘지 전통이 북위로 전달되어 완비된 묘지, 즉 <馮熙墓誌>가 제작되었다는 것이 북위 묘지 제작에 관한 유력한 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남조로부터 북조로 정형화된 묘지의 관습이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위로 전달된 남조 묘지 전통의 최초 결과물이 <馮熙墓誌>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묘지가 있다. 바로 <申洪之墓誌>다. <申洪之墓誌>는 북위 延興 2년(472)이라는 紀年을 가지고 있지만, 묘주인 신홍지가 劉宋으로부터 북위로 강제 이주된 인물이기에 그의 묘지에서 보이는 관습은 남조 묘지 전통에서 기인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申洪之墓誌>는 <馮熙墓誌>에 비해 구성요소면에서는 銘辭가 결락되어 있어 정형화가 덜 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면에서 經典의 구절이 상당한 수준으로 인용 구사되어 있어 오히려 완성도는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상의 완성도는 500년도 이후 제작되는 완전히 정형화된 북위 묘지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馮熙墓誌> 전 이미 북위에서는 상당히 완비된 남조 묘지의 전통이 수입되어 十六國時期와는 다른 정형화된 묘지가 제작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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