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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20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275 - 31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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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용재총화』에 전하는 ‘관화지례(觀火之禮)’에 관하여 그것의 기원과 변천 및 연행양상에 관해서는 문헌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관화는 고려시대 연등회 등에서 연행되던 설화산대(設火山臺)가 조선시대 세조때 양식화된 것인데, 시대를 거치면서 불교적인 성격에서 상무적인 성격으로 변하여 조선왕조에 채택된 것이다. 그 명칭들도 또한 많은 변화를 거쳤는데, 고려시대에는 대체로 설화산대(設火山臺), 설화산희(設火山戱)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초에는 화희(火戱), 방화(放火) 등으로, 조선세조이후로는 관화(觀火)로 정착되게 된다. 그러나 관화의 대표적인 잡상이 화산대인 까닭에 설화산대도 또한 동물이칭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설화산대와 관화는 고려말과 조선초를 거치면서 성격적 변화와 더불어 용어의 변화가 생기는 것 외에 그 시기와 용도, 담당자 및 연행목적 등에서도 변화되게 된다. 즉 고려말에 설화산대는 주로 사월 초파일에 연등회 때나 각종 연회시에 설행되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주로 계동나례일에 시행되었다. 따라서 주관도 고려말에는 승려들이 위주가 되었다면, 조선시대에는 나례의 일을 맡아 보던 군기감에서 주관하게 된다. 연행형태는 전자가 주로 화산대를 위주로 각종 잡희를 병연하였다면, 후자는 화산대의 설행보다는 화희, 즉 불꽃놀이에 더 치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양자의 연행은 성격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나타나는데 고려시대말 설화산대는 주로 연등회나 각종 연회에 수반되어 종교적, 유희적 성격을 띠었던 것이 조선시대의 그것은 계동나례 등에 편성되어 사기(邪氣)를 물리치는 것과 동시에 군무(軍務)를 익히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를 연행하는 목적도 고려시대의 설화산대는 종교의식이나 궁정의식의 성대함을 위해 거행된 반면, 조선시대의 그것은 왜국 사신연 등에서 군국의 위엄을 알리기 위해 연행되었다. 이처럼 고려시대 화산대의 전통이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관화로 양식화 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태조, 태종의 상무적 성격에 의해 화산대가 채택되면서 지속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화산대만을 세워 잡희 등을 연행하던 것이 화산대외에 화려한 불꽃놀이가 추가되면서 점차 양식화된 관화의 전통으로 조선시대 세조무렵에 체계화되게 되었다. 그러나 나례(儺禮)나 산대(山臺) 등이 중국에서 유입된 것과는 달리 관화는 우리나라 독창적인 것으로 그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성이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나, 관사, 관처용 등과는 달리 {악학궤범}에도 수록되지 못하고 중종 39년 이후로는 더 이상 실록에서 조차도 기록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이 무렵 폐지되고 더 이상 연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관화가 기록도 소략하고, 상대적으로 일찍 폐지되게 된 까닭은 아마도 워낙 소용되는 비용과 노동력의 출혈이 많았던 것이 제일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외에도 조선이 점차 숭유억불 정책 및 성리학적 성격으로 변천해감에 따라 이 관화도 잡희 중의 하나로 전락되어 폐지된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또한 다른 여타 궁중 의식에서 연행을 담당했던 여기(女妓)나 무동(舞童)과는 달리, 관화는 군사들이나 광대들이 중심이었다. 이는 조선중기로 갈수록 점차 문치주의 적인 성리학적 국가의 성격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조선 중기 각종 궁중의식이 양식화되어 『악학궤범』에 수록될 때에도 이 관화의 예는 배제되게 되었으며, 따라서 이와 같은 전통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만약 관화의 예가 『악학궤범』에 일부나마 수록되었다면, 이와 관련된 여러 연행종목들도 관나에서 처용무의 경우와 같이 부분적으로나마 전승되었을 수 있을 것이다. 연행양상은 변하지 않고, 국가적 성격은 점차 변하여 이질감으로 인한 폐지의 예를 이 관화가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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