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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朴現圭 (順天鄕大學校)
저널정보
춘원연구학회 춘원연구학보 춘원연구학보 제15호
발행연도
2019.8
수록면
207 - 229 (23page)
DOI
10.31809/crj.2019.08.1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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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임오군란 때 청 천진과 보정부에 연금당한 興宣大院君(李昰應)과 許泳의 수창시와 유폐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였다.
1882년(고종 19)에 임오군란이 발생하여 흥선대원군이 다시 집권하였다. 곧이어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종번 관계를 강압할 목적으로 군대를 한양으로 보내어 흥선대원군을 납치하여 천진으로 데리고 갔다가 다시 보정부에 유폐시켰다. 허영은 지기로 삼은 흥선대원군을 보필하기 위해 청나라로 들어가 함께 유폐 생활을 하였다.
천진 유폐지는 北洋水軍 營務處이며, 현 천진시 下平區 赤峰道 1~5號에 소재한다. 보정부 유폐지는 옛 淸河道署이며, 현 보정시 蓮池區 裕華路 245號에 소재한다. 훗날 옛 청하도서 자리에 보정시천주교당이 들어섰다. 흥선대원군과 허영은 사실상 연금상태였다. 이들이 시를 짓거나 난초를 치는 것이 유폐지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이들의 수창시는 유폐지에서 견디기 힘든 고초를 많이 읊었다. 이때 흥선대원군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며 체념하는 심정을 자주 토로했고, 허영은 흥선대원군에게 장차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며 희망을 부여시켰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天津 유폐지 고찰
3. 保定 유폐지 고찰
4. 흥선대원군과 허영의 詩友 관계
5. 흥선대원군과 허영의 수창시 감상
6.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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