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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수연 (유원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68輯
발행연도
2019.4
수록면
153 - 195 (43page)
DOI
10.31335/HPTS.2019.04.68.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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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 3월에 일어난 戊申亂은 조선후기 중앙정계 뿐 아니라 반란과 연관된 지방의 향촌사회에도 오랫동안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무신란에 참여한 계층은 다양하지만 무신란의 계획과 전개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것은 士族이다. 그러나 단순히 중앙 붕당정치의 결과로만 난이 일어난 것은 아니며, 더 복잡한 지역적 배경이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반란에 가담한 지역 사족의 경우 무신란 이전의 동향에 대하여 확인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글에서는 鎭川地域을 주목해 보았다. 무신란 당시 청주성을 점령한 반란군은 진천에서 상당 기간 머물면서 군대와 군비를 추가로 마련하였기 때문이다.
무신란 이전 진천지역의 사족 동향을 살펴본 결과 17세기 중반 이후 진천지역은 사족들의 붕당적 대립이 두드러지고 있었다. 특히 중앙 정치가 점차 老論중심으로 돌아가고, 진천지역에서 노론의 영수 宋時烈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진천지역 少論계 사족들은 당파적 소외감이나 정치·사회적 불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즉, 1675년 진천 사족 李寅馨이 池若海 후사사건에 가담했다가 형추를 받기도 하고, 1679년 李寅賓이 李有湞 옥사사건으로 송시열의 유배를 청했으나 수락되지 않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1721년부터 1722년까지 이어진 辛壬士禍로 소론에게 정권이 넘어가자 진천지역 사족들은 신속하게 1722년에 芝山書院을 건립하여 소론의 영수이자 진천 인물인 崔錫鼎을 독향하였고, 사액을 받았다. 다음해에는 松泉書院에 최석정을 추향하였으며, 1724년에는 소론계 淸州李氏 가문에서 李公升書院을 세웠다. 그러나 1724년 영조 즉위 후 다시 진천지역 소론세력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즉, 무신란 이전 진천 사족들은 붕당별로 대립하고 있었고, 무신란 직전에는 소론 세력의 정치적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것이다. 반란군으로 자원하여 활동한 鎭川幼學 邊遇翼의 상소 등을 보면 지방에 있는 비노론계 사족들은 ‘京儒’와 ‘老論’이 되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란군 세력은 인지하였고, 진천을 비롯하여 소론이나 남인계 사족이 활동하던 목천·청안지역에 僞守令을 보내어, 군사와 무기를 모집하였다. 그리고 진천지역 소론계 일부 사족들 역시 반란을 통한 정권참여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17세기 후반부터 증폭되기 시작한 진천지역 사족의 대립과 갈등이 중요한 계기가 되어 일부 소론계 사족은 무신란 당시 반란군으로 활동하였으며, 노론계 사족은 반란군을 진압하는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즉, 변우익 등 진천 소론계 사족들은 반란군으로, 채지홍을 비롯한 平壤趙氏·鎭川宋氏·驪興閔氏 등 진천 노론계 사족들은 의병세력으로 연대하였던 것이다.
무신란은 결국 진압되었고, 진천지역은 의병으로 참여했던 노론계 사족의 포장과 추숭이 이어지며, 지역내에서 위상이 높아졌다. 이와는 반대로 진압된 진천의 반란군 가문은 물론, 소론 가문의 향촌지배력까지 매우 약화되었다. 즉 무신란이 진천지역 내 당파적 이해집단 간의 뚜렷한 분기점이 되었던 것이다.
이 글에서는 무신란을 중앙 붕당정치의 결과물로 이해하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지역·사회사적인 관점으로 진천지역 무신란을 바라보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도를 통하여 진천지역 사족의 분기양상이 결국 지역에서 무신란에 가담하거나 진압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지역 사족의 위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무신란 직전 진천지역의 사족 동향
Ⅲ. 무신란과 진천지역 사족의 연대적 성격
Ⅳ. 무신란 이후 진천지역 사족의 위상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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