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지연 (서울난곡초등학교)
저널정보
교육사학회 교육사학연구 교육사학연구 제28권 제2호
발행연도
2018.11
수록면
107 - 138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3)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정조대 춘 · 추도기 규정과 운영 과정을 검토함으로써 춘 · 추도기의 특징을 파악하고자 했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춘 · 추도기는 정조 즉위년에 시작된 성균관 과시로, 전강과 제술을 봄과 가을의 어느 날에 병설하고 유생들이 자원으로 선택하여 응시하도록 했다. 춘도기는 대개 1-2월에, 추도기는 대개 7-8월에 시행했고, 시행일 1-2일 전에 명령일 당일의 석식당 도기나 다음날의 조식당 도기를 가져오게 하는 방식으로 도기 수취를 예고하곤 했다. 정조대 후반에는 장기간의 식당 도기를 가져오게 하여, 보다 많은 생원 진사가 춘 · 추도기에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춘 · 추도기 전강과 제술의 시관은 각각 7명이었다. 기본 응시자는 도기명부에 이름이 있는 생원 진사와, 성균관 하재 및 사학(四學)의 유학이었다. 정조6년(1782)부터는 사학 재임도 성균관 재임과 마찬가지로 춘 · 추도기에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응시자 수는, 장기간의 도기를 수취하거나, 성균관의 생원 진사 식당 수 제한이 없는 시기에 시행하는 경우는, 수백 명 이상으로 늘기도 했다.
춘 · 추도기의 전강 경서는 삼경 중 왕이 낙점한 일경이었다. 정조는 삼경 중 『시전』과 『시전』을 주로 낙점했다. 전강은 최고 성적이 여러 명인 경우는, 다른 경서를 응강하게 하여 최우수자 1명을 가렸다. 제술에서는 일반적으로 비교가 없었으며, 변별력이 있는 문체로 여겨졌던 표(表) 책(策) 전(箋)을 어제(御題)로 출제하곤 했다.
춘 · 추도기의 최고은사는 전강과 제술 각각 1명에게 직부전시를 내리는 것이 법규로, 정조대 내내 이 기조는 유지되었다. 전체 은사자 수는 전강이 제술보다 많았지만, 직부전시자만은 제술이 전강보다 많았다. 은사자들의 구성은 직분의 차이가 두드러져서, 생원 진사는 제술에, 유학은 전강에 능한 면모를 보였다.
정조대 춘 · 추도기 전강과 제술 은사자들의 직분 차이는, 이전 시기부터 이어져 온 경향성이었다. 정조는 재위 내내 춘 · 추도기에 대해 전강과 제술 각각에 능한 유생을 선발하는 기능을 유지하게 했다.

목차

요약
Ⅰ. 서론
Ⅱ. 정조대 춘 · 추도기 운영의 실제
Ⅲ.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1)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9-374-000148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