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정지연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우용제
발행연도
2018
저작권
서울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1

표지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3)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숙종-정조대(1674-1800) 성균관 과시(課試) 규정과 운영의 실제를 검토하여, 당시 성균관 과시 운영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숙종대 전반 성균관 과시 운영에서는, 통독(通讀)으로 인해 유생들이 강서 공부에만 몰두하는 것을 조정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숙종1년(1675)에 통독을 폐지하고 성균관의 일상적 강학활동과 과시에서 모두 제술을 중시하는 정책을 폈다. 숙종대 후반에는 성균관 과시에서 전강의 잦은 결행과 유생들의 공부 경향이 강서와 제술로 나뉜 것을 해결하고자 했다. 전강의 결행은 은사가 높은 친림전강(親臨殿講)과 도기전강(到記殿講)을 실시함으로써 보완하였다. 공부 경향의 분기는 통독을 복설(復設)하면서 응시자들이 강서와 제술을 겸행하도록 하여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숙종대 후반에는 유생들의 공부 경향에서 강서와 제술의 분기가 오히려 심해졌다.
영조대 성균관 과시 운영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제술에 능한 경유(京儒)의 관?학 거재 기피와 이들의 강서 소양 부족이었다. 영조는 경유의 관?학 거재를 장려하기 위해 즉위 초부터 도기유생에 대한 과시를 자주 실시했다. 영조18년(1742) ?태학유생원점절목(太學儒生圓點節目)?에서는 제술 과시 응시를 위한 원점 50점 규정을 마련하였다. 영조35년(1759) ?과폐이정윤음(科弊釐正綸音)?에서는 제술 과시 응시자들은 과시 선후(先後)에 1번의 강서 시험을 치르는 규정을 마련하여, 이들이 강서 소양을 갖추도록 요구했다. 또한 영조는 성균관 과시의 은사를 상향 조정하고 은사자의 수도 확대했다. 이러한 정책은 영조 재위 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영조 재위 말에는 원점유생 과시는 실시되지 않고 도기전강이 자주 실시되면서, 제술에 능한 경유들은 관?학 거재를 기피하고 관?학이 강서에 능한 향유들로만 채워지는 현상이 재연되었으며, 빈번한 과시로 은사자 수가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했다.
정조대 성균관 과시 운영에서는, 성균관에 거재하는 생원?진사의 수를 늘리고, 관?학유생의 강서 소양을 배양하고, 성균관 과시를 정례적으로 실시하고자 했다. 정조1년(1777) ?거재유생원점절목(居齋儒生圓點節目)?에서는 제술 과시 응시 원점을 매년 30점으로 조정하여 보다 많은 생원?진사의 거관(居館)을 도모했다. 정조는 성균관의 일상적 강학활동과 원점을 연계하고, 상대적으로 왕의 재량권이 많은 일차전강의 운영방식, 은사 등을 때에 따라 변화시키면서 제술에 능한 유생들이 강서 공부에도 힘쓰도록 유도했다. 또한 정조는 이전까지 결행이 잦았던 일차전강을 비롯하여 모든 성균관 과시를 결행없이 시행하였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 매년 일정 수의 원점유생이 배출되었고, 정조 재위 말이 되면 생원?진사의 강서 소양에 대해 정조 스스로 만족하게 된다. 이외에 정조대는 성균관 과시의 응시자가 확대되고, 과시의 제술화 현상이 나타났다.
숙종-정조대 성균관 과시 운영과 관련한 문제가 항상 의도대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의도대로 해결되었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폐해를 낳는 경우도 있었고, 하나의 문제 해결은 곧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 당시 사람들은 제도 안에서 자신들의 이해를 바탕으로, 성균관 과시의 과제를 인식했고 그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본 연구에서는 숙종-정조대 성균관 과시 운영의 실제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를 밝혔지만, 동시에 보다 깊이 검토해야 할 문제가 부각되었다. 숙종-정조대 성균관 과시를 통한 유생들의 학풍 변화의 성과와 한계, 성균관 과시의 응시자의 변화, 성균관 과시와 일상적 강학활동의 관계, 성균관 과시와 과거(科擧)와의 관계는 추후에도 계속해서 검토되어야 할 과제다.

목차

Ⅰ. 서론 1
Ⅱ. 법전의 성균관 과시 법규 분석 10
1. 속대전(1746, 영조22) 성균관 과시 법규 분석 10
1) 과시별 법규 11
(1) 전강 11
(2) 절일제 및 황감제 13
(3) 통독 18
2) 은사 관련 법규 21
2. 대전통편(1785, 정조9) 성균관 과시 법규 분석 23
1) 과시별 법규 23
(1) 춘추도기 23
(2) 절일제 및 황감제 25
2) 은사 관련 법규 25
Ⅲ. 숙종대 성균관 과시 운영 29
1. 태학성전(1689, 숙종15)의 성균관 과시 규정 30
2. 성균관 과시 운영의 실제 32
1) 운영방식 32
(1) 시관 및 시행절차 32
(2) 응시자 39
(3) 상급 및 은사 41
2) 과시별 시행 여부 47
3) 은사의 사용 55
3. 성균관 과시 운영의 쟁점 60
Ⅳ. 영조대 성균관 과시 운영 63
1. 성균관 과시 관련 절목 및 정식 분석 64
1) 태학유생원점절목(1742, 영조18) 64
2) 과폐이정윤음(1759, 영조35) 72
3) 경인정식(1770, 영조46) 75
2. 성균관 과시 운영의 실제 79
1) 운영방식 79
(1) 시관 및 시행절차 79
(2) 응시자 93
(3) 상급 및 은사 101
2) 과시별 시행 여부 108
3) 은사의 사용 115
3. 성균관 과시 운영의 쟁점 119
Ⅴ. 정조대 성균관 과시 운영 122
1. 성균관 과시 관련 절목 및 규정집 분석 123
1) 거재유생원점절목(1777, 정조1) 123
2) 태학지(1785, 정조9) 128
2. 성균관 과시 운영의 실제 133
1) 운영방식 134
(1) 시관 및 시행절차 134
(2) 응시자 147
(3) 상급 및 은사 153
2) 과시별 시행 여부 161
3) 은사의 사용 164
3. 성균관 과시 운영의 쟁점 170
Ⅵ. 요약 및 결론 175
참고문헌 181
Abstract 185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