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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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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나영남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61輯
발행연도
2018.7
수록면
67 - 86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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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초에 중국은 遼 · 宋 · 金 등 3朝가 잠시 鼎立했던 시기로 그들의 대립과 갈등은 서로 뒤얽혀 매우 복잡했다. 최초 요에 이어 북송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동경지역의 발해인과 연운지역의 한인 중에는 변절을 일삼던 자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발해인 郭藥師가 대표적이다. 그는 철주 출신의 발해인으로 요의 장수였으나 송에 귀순했다가 다시 금에 투항한 인물로 『金史』에 “곽약사는 요의 餘孼(재앙)이고 송의 厲階(재앙의 빌미)이며 금의 功臣이다. 그런데 한 신하의 몸으로 세 나라의 禍福이 되었다”라고 贊하여 말하고 있다.
당시 요-송-금의 삼각 구도 속에 전란을 겪던 발해인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들의 활로를 모색해야만 했다. 이들은 係遼籍 주민이었으나 요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어딘가에 귀속되어야만 했다. 그들 중에 곽약사와 상승군은 왕조교체기에 변절을 일삼는 기회주의자라기보다는 오직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강한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이 요와 북송의 멸망을 초래했다기 보다는 傭兵이나 다름없었던 常勝軍을 이용하여 국운을 보존하고자 했던 북요 및 북송 위정자들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곽약사와 상승군의 관계
Ⅲ. 곽약사와 상승군의 행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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