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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의도 (동아시아문물연구학술재단)
저널정보
한국중세고고학회 한국중세고고학 한국중세고고학 제2호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75 - 10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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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숟가락은 중국북방과의 교류를 통하여 변화하게 되는데 이번 글은 중국북방과의 교류 이전의 숟가락 사용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살펴본 것이다. 이를 위하여 지금까지 고려 전기-적어도 11세기 전반 이전- 석곽묘에 해무리굽청자완과 함께 부장되는 숟가락이 어떤 배경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하여 검토해 보았다. 그 숟가락은 다양한 기물과 함께 토광묘에서 주로 출토되는 단면 『S』자 형의 숟가락과는 분명히 양식적으로 구분되는 것이었다. 필자는 석곽묘는 통일신라의 전통 묘제로 판단하였고 아울러 숟가락 또는 식도구가 부장되는 전통이 이미 통일신라사회에 일부 계층에서나마 유행하고 있었음을 청주 용정동 통일신라시대 석곽묘에서 청동제국자가 출토되는 것이 반증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은 결국 통일신라가 한화정책을 시행하면서 묘제의 변화와 함께 부장품의 변화도 일부 일어나고 있었고 이러한 변화의 진원지는 당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말하자면 당나라의 전축분과 그 내부에 생활도구 일체를 부장하던 전통이 신라사회에 전래되어 박장으로 대표되던 장법이 일부 변화하게 된 것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변화가 11세기경 까지는 고려사회에 통일신라의 전통이 계승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신라의 전통은 고려와 거란과의 갈등이 해소되고 거란사람들이 고려로 다수 유입되면서 11세기 중반 이후는 요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어 숟가락의 형태도 변하게 되고 부장품의 내용도 변하게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생각해보면 요의 숟가락도 당의 숟가락을 계승한 것이고 통일신라의 숟가락도 당의 숟가락을 받아들인 것이지만 고려 초기의 숟가락은 당의 숟가락을 계승하여 요 스타일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통일신라 이래의 숟가락으로 보는 것이 고고자료를 검토한 결과이다. 이것은 고려 개국 이후 통일신라 이후 일부 계층에서 사용되던 숟가락이 그 사용 계층이 확장되고 사용하던 숟가락이 중국 북방과의 교류가 증가하면서 통일신라 전통에서 북방 스타일의 숟가락으로 변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고려는 개국 초기에 발해의 멸망으로 요를 금수의 나라로 지목하면서 강한 적대심을 키워가고 있었고 또한 자국의 문화에 대한 정통성을 내세우던 상황으로 외부와의 교류에 의해서 자신들의 문화를 쉽사리 바꾸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이와 같은 숟가락 형태의 변화는 당시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려 초기의 숟가락 출토 상황
Ⅲ. 당묘와 통일신라묘의 부장품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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