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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태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59집
발행연도
2018.2
수록면
229 - 271 (43page)
DOI
10.18496/kjhr.2018.02.5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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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화교섭 결렬 선언 이후, 정유재란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대상으로 하여 조선의 재침 대응책을 살펴보았다. 강화교섭기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황신은 교섭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의 사행록인 『日本往還日記』를 통해 강화교섭의 결렬 당시의 상황에 접근할 수 있다. 황신은 일본에서 미리 사람을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였고, 부산에 도착한 후에는 조정에 보고서를 올려 보냈다. 황신이 서울에 올라온 후에는 선조와 만나 상세한 정보를 전달했다.
연이어 도착하는 정보를 받아들인 조선은 빠른 논의를 거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도출하였다. 첫 번째는 국내 방비였다. 조선은 통신사와 일본측 교섭담당자가 전한 정보를 반영하여 방어책을 마련하였다. 두 번째는 명 조정에 대한 보고였다. 조선은 당시 상황이 명에게도 위협임을 강조하며 구원군을 요청했고 허락을 받아냈다. 세 번째는 교섭선 유지였다. 조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요구조건이 왕자임을 확인하였다. 조선은 이 조건은 거부하였으나 사신 파견과 같은 대안은 열어두었다. 이와 같이 조선이 입수한 정보는 실제 대응책에 즉시 반영되고 있었다. 이는 이전 전쟁에서 조선이 보여주지 않았던 대응방식이었다. 조선은 유연한 자세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하였다. 비록 그것이 ‘전쟁 방지’라는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해서, 조선이 거둔 성과를 낮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강화교섭 결렬의 원인과 통신사의 정보파악
3. 통신사의 정보전달
4. 조선의 대응책과 의의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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