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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종학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한국정치학회보 제51집 제5호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185 - 21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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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헌(申櫶)의 『심행일기(沁行日記)』와 『을병일기(乙丙日記)』, 그리고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미간문헌들에 기초해서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의 체결과정을 재구성한다. 일반적으로 조일수호조규는 조선에 강요된 불평등조약 또는 조선 정부의 자주적 개국의지의 산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검토한 문헌들은 조약체결에 임하는 일본 측의 목표가 처음부터 제한적이었으며, 공식 협상과정의 이면에서 여러 가지 회유와 기만책이 사용됐음을 폭로한다. 당시 일본의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정권은 메이지 유신 이래 수년 간 이어진 조선 문제의 결착(結着)을 짓고, 또 국내의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의 페리(Matthew C. Perry) 제독의 선례를 모방해서 포함외교 방식으로 조선과 불평등조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하지만 그들이 직면한 근본적 딜레마는 현실적으로 조선에 대해 전쟁을 벌일 능력도,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었다. 조일수호조규가 결국 불완전한 불평등조약이 된 것은, 전권변리대신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의 실착이나 조선정부의 능동적 대응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러한 딜레마가 빚어낸 결과였다.

목차

논문요약
Ⅰ. 서론 : 강요된 불평등조약인가, 자주적 개항인가?
Ⅱ. 일본 사절단의 사명(使命)과 외교적 사전공작
Ⅲ. 조일수호조규 체결과정
Ⅳ.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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