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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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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9호
발행연도
2017.11
수록면
359 - 394 (36page)
DOI
10.21490/jskh.2017.11.69.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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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개화기 조선 지식인들이 ‘支那’라는 용어를 수용한 과정과 그 과정으로부터 ‘支那’라는 칭호에 파생된 문화적 함의를 고찰하였다. ‘支那’라는 명칭을 수용한 과정은 주로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대별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윤치호를 비롯한 초기 渡日유학생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일본에서 신문명・신학문을 수용하는 도중에 ‘支那’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으며, 청나라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청국이 조선의 독립・자주권을 간섭하고 있는 것을 깨달은 개화지식인들은 중국을 ‘支那’라고 칭함으로써 ‘上國’인 것을 부정하였다. 두 번째 단계는 청일전쟁 이후 민간지의 발간과 아울러 언론계 지식인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당시의 세계정세를 잘 파악한 언론인들은 국력이 극도로 쇄약한 청국의 실상을 보도하면서 시모노세키조약 이후 실제적으로도 ‘他者’가 된 청국의 이미지를 새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와중에 그들은 ‘中國’이라는 칭호보다는 ‘支那’를 더 선호하며, ‘支那’라는 단어를 당시의 언어 체계에 정착시켰다. 세 번째 단계는 을사늑약 이후 황실의 권력이 나날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애국계몽운동’을 주도한 지식인들에 의해 ‘支那’라는 명칭이 문화적 함의가 부여되며 보다 널리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支那’라는 ‘他者’를 문화적 차원에서 배척해야 하는 표상으로 치환함으로써 ‘한민족’의 정체성을 두드러지게 부각시켰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근대 이전 ‘支那’ 명칭의 수용 양상
3. 개항기 ‘支那’ 명칭의 재등장
4. ‘支那’ 명칭의 정착과 문화적 함의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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