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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수자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동방학 제37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47 - 17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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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개항하면서 한중일 3국은 조선과 청의 전통적인 조공, 책봉관계, 그리고 자주 개념을 서로 다르게 이해, 해석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일본은 조일수호조약을 체결하면서 사용한 ‘자주국’이라는 용어를 통해 조선이 중국에 대해 자주, 독립국임을 분명히 하려고 하였다. 조선은 중국의 속방(屬邦)이나 내치외교는 자주(自主)라고 하는 ‘형식적인’ 종속관계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조선이 자국의 속국임을 실제화하려 했다. 이와같이 선명하지 않은 관계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청나라가 패하면서 종결되었다. 그리고 1899년 대한제국이 중국과 한청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정치적 의미와 중세적 지역의식에서 조선은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개화 지식인들은 탈중화의 주요한 방법으로 문명담론을 활용하였다. 문명담론에 의거해 중국적인 것은 거의 예외없이 배격, 부정되었다. 중국의 것이 야만적인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유교문명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하고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독립신문』은 중국을 서양이 갖추고 있는 문명의 양상들이 모두 결여된 어리석고, 천하고, 더러우며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없는, 미개화 혹은 야만과 동격화 하였다. 중국은 더 이상 문화의 중심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지역’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을 주변국으로 간주하면서도 동양의 방어를 위해서는 조선과 중국, 일본이 연대하여야 한다는 지역연대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대의식은 자연스럽게 서양과 대별되는 아시아 지역공동체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이것은 조선의 위치를 독립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동시에 자국의 역할을 규정한 것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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