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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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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대한철학회 철학연구 철학연구 제95집
발행연도
2005.8
수록면
437 - 46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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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長生(沙溪, 1548~1631)은 율곡의 嫡傳으로 기호유학의 중심적 위치에 있으며, 특히 '東邦 禮學의 宗匠'으로 일컬어질 만큼 조선조 예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학문과 사상은 주로 예학과 성리학의 양면에서 평가될 수 있는데, 이러한 그의 학문과 사상형성의 배경에 대한 검토가 본 연구의 목적이다. 사계에 있어 가장 특징적인 면은 '성리학에서 예학에로'의 관심전환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도 성리학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학문적 관심은 예학에 경도되었고, 그의 문하에서 많은 예학자가 배출되고 예학적 연구 성과를 거양하였다. 이러한 예학에로의 관심전환은 17세기라는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임진, 병자의 양난과 가난, 질병, 그리고 당쟁으로 인한 지도층의 분열로 국가질서의 문란, 사회기강의 와해, 개인윤리의 위기 등은 예학 발흥의 좋은 기회였다. 아울러 16세기 성리학시대는 이제 그 性理의 구체적 실천으로서 예학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상적 배경하에서 사계는 예학을 자신의 도학적 사명으로 인식하고 이에 전념하였다. 그의 예학공부에 있어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이는 宋翼弼(龜峰, 1534~1599)로 보이며, 율곡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13살 때 송익필의 문하에 나아가 예학을 배웠고, 20살 때 율곡의 문하에서 성리학과 예학을 수업하였다. 사계가 이와 같이 당대 기호유학의 중심인물이었던 율곡, 구봉의 문하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부친 金繼輝와 율곡, 구봉과의 돈독한 우정과 교유 때문이었다. 이들 외에도 牛溪 成渾, 土亭 李之? 은 그의 존숭이 컸으며, 宋浚吉을 통해 愚伏 鄭經世의 영남예학을 접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그의 친우 申義慶(1557~1647)은 그의 예학수업과 연찬에 훌륭한 동반자로서 직접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받았다. 끝으로 그의 성리학은 주로 율곡의 영향하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율곡의 이기론, 심성론, 격치론 등 성리학의 대체를 계승하고 있지만, 인심도심설에서 도심의 인심화를 반대하고 인심을 곧 인욕으로 보는 것처럼 그의 독창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사계의 학문적 연원은 멀리 주자에 연원하면서, 율곡과 구봉의 예학과 성리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성리학적 측면에서는 율곡의 영향이, 예학적 측면에서는 구봉의 영향이 더욱 컸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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