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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새봄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57호
발행연도
2017.9
수록면
330 - 361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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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메이지 전반기에 자유민권운동의 발흥과 ‘一身二生’ 세대의 지식인들 중 유학자에게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 하나의 사례를 갖고 고찰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사카타니 시로시[阪谷素]라는 유학자로 기존의 연구들에서는 주로 그의 메이로쿠샤[明六社]에서의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는 『메이로쿠잡지[明六雜誌]』에 다수의 논설을 기고했고 이것이 주로 분석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사카타니는 『메이로쿠잡지』의 정간 이후에도 다른 잡지들을 통해 꾸준히 글을 남겼다. 본 논문은 이 시기의 글들, 즉 메이지 8년(1875) 이후 1881년의 사망 직전까지의 글들을 소재로 삼는다.
메이로쿠샤 시절의 사카타니는 민선의원 설립문제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는 ‘상하동치(上下同治)의 정체(政體)’를 확립한다는 큰 틀 안에서 민선의원설립을 진행시킬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메이로쿠잡지』에서의 그러한 논의가 이후의 논설들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면서 이후 그는 교육의 논의에 중점을 두고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안한다. 이 배경에는 당시 고조되어가던 민권운동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인민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주장한다는 커다란 명분 아래, 개별 활동가나 참가자들은 제각기 다른 목적의식을 갖고 모이는 경우가 많은 오합지졸적인 성격을 띠었다.
사카타니는 올바른 ‘민권’ 확립을 위한 선결 과제로서 ‘민권’을 주장하는 자들의 ‘식견(識見)’과 ‘재정(裁定) 능력’이 먼저 제대로 갖춰져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으로 그는 특히 ‘학업’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인격적인 수양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유학적인 요소가 짙게 깔려있었다. 일본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공자의 가르침이 지닌 중요성을 지적하며 유학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육 개혁의 방안들을 제안했다.
본 논문은 이상의 내용을 통해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적 정치체제의 정착 과정에서 유학이 지녔던 의미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자 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민선의원 설립 논쟁 속 사카타니의 논의
Ⅲ. ‘학업’의 시대를 위한 구체적 방안들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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