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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정수 (성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신약학회 신약논단 신약논단 제24권 제3호
발행연도
2017.9
수록면
713 - 74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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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시대에 일어난 유다인들의 유배와 귀환은 고대세계의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특이한 것이라면 민족의 역사와 문화 회복이 모국 본토가 아니라 유배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 회복 운동은 본토에서 성공을 거두고 다시금 모든 디아스포라에 영향을 주었다. 이스라엘 회복은 귀환공동체의 엘리트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터를 놓았고, 그 위에 바로 고대 유대교가 세워졌다. 그들은 율법의 백성이라는 정체성과 성전공동체라는 종교적 자치형태를 수립했고, 이러한 형태는 이집트의 엘레판티네 유대인 공동체의 정체성과 성전재건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증거로 P. Cowley 21번과 30번을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추진한 이상주의적 율법 준수는 본토는 물론 디아스포라 유대인 성전공동체가 사회문화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투쟁하여 주변으로부터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원전 200년경부터 시리아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그 후 마카베오 혁명으로 유대성전국가가 수립되면서 디아스포라 성전공동체의 운명은 급격히 본토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요동쳤다. 그에 따라 이집트의 유대인들은 이집트인들과 문화적 갈등을 경험해야 했다. 이런 문화적 동화와 저항의 파고를 넘나들며 그들이 성전공동체와 율법의 백성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했던 원천에 고대 유대교의 이스라엘 회복의 신앙이 있었다.

목차

초록
I. 서론
II. 페르시아 시대-이스라엘의 회복과 엘레판티네 성전공동체
III.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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