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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옥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02집
발행연도
2017.3
수록면
111 - 14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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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남 신안군 비금도의 부속도서인 가산도 간척지 이용실태에 관한 사례연구다. 조선시대에 비금도는 6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근현대에 간척으로 인해 작은 섬이 소멸되면서 대규모 간척지가 조성되었다. 비금도의 부속도서였던 가산도 역시 간척 결과 대규모 천일염전이 개설되었다. 과연 20세기 비금면 가산도 간척의 주체는 누구였을까? 가산도 간척지는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을까? 가산도 간척지 조성 결과 섬의 외형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가산도 간척이 섬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가산리 지적도』와 『가산리 토지대장』, 그리고 섬 주민이 축조한 『방조제 대장』, 염전 개설과 소금생산을 위해 작성된 『염전문서』 등을 분석하였다.
가산도 간척은 개인 혹은 조합을 단위로 하여 추진되었다. 가산도 간척지는 농경지보다 염전으로 활용되었다. 가산도 간척사업은 비금면 전역에 영향을 주었다. 가장 큰 변화는 면소재지와 포구의 이동이었다. 본래 비금면사무소는 광대리에 입지하였는데, 일제강점기 광대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신원리로 1차 이주하였고, 신원리에서 덕산리로 2차 이주를 단행하였다. 면사무소의 이전은 비금도의 중심 포구까지 이동시켰다. 본래 비금도 주민들은 누대로 광대리 포구를 이용하여 섬에 입도하고 내륙과 소통하였다. 그런데 비금도 간척지 조성 결과 광대리 포구 대신 새로 가산 선착장이 개설되었다. 이러한 비금도의 변화는 1920년대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모두 간척의 결과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佳山島의 입지와 간척문서
Ⅲ. 간척지의 분포와 간척의 주체
Ⅳ. 地目 변경으로 인한 천일염전의 증대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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