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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광연 (동국대)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25호
발행연도
2017.3
수록면
165 - 19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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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의 종파 성립에 대한 선행 연구들을 분석하는 작업의 일환으로서, 蔡尙植의 견해들을 검토한 글이다.
金映遂가 제창한 五敎九山說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許興植이 신라말․고려초 종파 성립설을 주장한 이후, 채상식은 신라 중대 종파 성립설을 내세웠다. 그는 신라통일기를 중세의 기점이라 하고, 그 지표로서 불교 교단의 형성, 교학 연구의 심화, 일반 민으로의 불교대중화를 내세웠다. 그는 교단의 형성과 더불어 종파가 성립하였다고 하면서, 종파를 ‘특정 사상이 별도로 교학․의식(의례)․신앙 면에서 체계를 갖추고 소속 사원을 통해 그의 사상을 전 계층과 공유하게 된 집단’이라고 정의하였다.
하지만 신라의 불교 교단 내에 의식(의례) 면에서 독자적인 체계를 갖춘 집단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교단의 통제권에서 조금은 자유로웠던 초기의 義相系에서 채상식의 정의에 부합되는 ‘종파’의 요소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의상계의 모습은 7세기 후반~8세기 초반 신라 불교계 전체 상황에서 예외적이라 할 수 있고, 8세기 중반 경에는 의상계도 왕경으로 진출하여 중앙 교단에 동화되어갔기 때문에, 초기의 모습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었을지 미지수다. 결론적으로, 채상식이 정의한 요소를 갖춘 ‘종파’는 신라 중대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승관제와 교단
Ⅱ. 종파 논의의 타당성
Ⅲ. 교단과 종파의 관계 : 義相系를 중심으로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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