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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제훈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6호
발행연도
2017.2
수록면
121 - 166 (46page)
DOI
10.21490/jskh.2017.02.6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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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즉위교서에서 유교 의례의 실천을 선언하였다. 오랫동안 전통이었던 불교식 조상의례는 국왕과 왕비가 사망하고, 관련된 의례를 진행하게 되면서 유교적 의례로 대체되었다. 종묘 의례는 태조의 사망 후, 태조 神主를 종묘에 모시는 과정에서 조선식의 定形이 마련되었다. 이를 기준으로 山陵과 原廟, 眞殿등의 의례가 정리되었다. 태종 때 부터 종묘는 보편적 유교 의례로 설정되었다. 반면에 俗祭에는 揖, 俯伏등 종묘 의례에 없는 동작을 사용하고 奠幣, 飮福등의 절차를 종묘와 다른 패턴으로 시행하였다. 세종대를 거치면서 점차 조상의례는 유교 의례 기준에 없는 동작은 해소하고, 각각의 절차를 일관된 방식으로 통일하되, 의례 구성에서 어떤 절차를 넣거나 빼거나 하여 서로를 구분하였다. 처음에는 종묘 의례를 기준으로 속제를 정비하였으나, 나중에는 속제의례에서 정리된 패턴으로 종묘 의례를 수정하기도 하였다. 『국조오례의』 왕실 조상의례는 태종대 이래의 일관된 원칙에 따라 정비된 결과물이었다. 正祀인 종묘의례는 동아시아의 보편적 유교의례에 맞게 설정되었다. 俗祭인 문소전과 산릉, 진전 등은 조선 습속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묘의 어떤 절차가 생략되기는 하였지만, 유교 의례의 기준에 맞았다. 이렇게 정비된 조상의례는 종묘와 속제의 구분 없이 제사가 진행되는 패턴에서는 철저하게 유교적이었다. 의례는 사회 전체에서 실행될 수 있을 때, 의미를 갖게된다.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는 이미 불교적 조상의례의 전통이 오랜 습속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를 대체하는 것은 정치적 선언만으론 불가능하였다. 더구나 부모를 위하는 의례는 이를 시행하는 자손의 심적인 위안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했다. 낯설고 준비하기 어려운 유교 원칙이 적용된 종묘의례는 사회 일반이 실행할 수 없었고,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이를 통해 위안을 받는다는 의례 목적이 달성될 수 없었다. 종묘 의례의 정비는 유교 의례의 기본적 전제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가능하지 않았던 조상 의례의 사회적 확산은 속제 범주의 의례가 마련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유교적 國家 儀禮 정비의 지향과 쟁점
3. 要素와 禮度를 차별화한 祖上儀禮 定形化 과정
4. 要素와 禮度에서의 일관성을 적용한 祖上儀禮 구성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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