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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시아학회 아시아연구 아시아연구 제14권 제2호
발행연도
2011.6
수록면
141 - 163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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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은 인간경험의 근본적 토대라는 점에서 도시성장과 변화를 이해 하는 데 매우 적절한 틀이다. 도시라는 장소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이해될 때 비로소 현재의 ``풍경``을 만들어 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층위를 잘 이 해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도시공간에 내재된 상징적, 표상적 의미를 읽을 수 있게 된다. 도시연구를 특정 관점이나 하나의 분과 학문에만 의존하는 경우 대상 도시의 특정 측면만 강조되어 절름발이식 이해에 그칠 수 있다. 그러므로 균형 잡힌 도시이해를 위해서는 도시사적이고 학제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방콕은 1782년 라따나꼬신(Rattanakosin) 왕조의 개조와 함께 절대왕권의 상징공간으로 서 그 위상과 역할이 강화되었고, 1855년 영국과의 보우링(Bowring) 조약을 계 기로 서양의 제도와 문물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 제도정비와 도시기반이 구 축되어 동남아시아의 교역과 상업중심지로 성장하였으며, 1932년 입헌군주국이 되면서 민족주의의 확산과 함께 민족주의적 근대화 공간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 글은, 1782년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를 태국의 근대화시기로 보고, 이 기간 의 방콕이 국가발전의 선도공간으로서 태국역사와 대내외적 여건 변화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여 왔는지 거시적 차원에서 분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글의 전반부는 크룽텝(Krung Thep)으로 불리던 방콕이 라따나꼬신 왕조의 개조 후, 성채도시가 구축되고, 1855년 보우링 조약을 계기로 동남아 교역의 중심도시로 부상하던 세기 초반까지의 도시성장을 절대왕권의 확립과 이민자 20 중심의 교역증대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후반부에서는 입헌군주제가 도입되어 군부 및 관료 엘리트가 주도하는 내향적 근대화가 추진된 1940년대 초반까지의 도시성장과 변화를 민족주의적 근대화라는 측면에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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