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姜眞周 (국립한국교통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36호
발행연도
2016.4
수록면
43 - 104 (6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龍仁의 할미山城, 麻北洞遺蹟, 寶亭洞古墳群은 新羅北進期遺蹟으로 統一樣式土器가 출토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上限과 下限이 비교적 명확하다. 또한 성격이 다른 山城-聚落-古墳유적으로 造成과 運營의 목적이 달라 주목된다.
본고에서는 이들 유적의 조사 현황과 출토유물 양상을 살펴보고 그중 가장 많은 출토량을 보이는 土器중 주요 기종인 高杯蓋(뚜껑) 附加口緣臺附長頸壺등의 분석과 비교검토를 통해 성격과 특징을 고찰하였다. 산성과 취락유적의 고배와 뚜껑은 고분에 부장된 것보다 크기가 크고 有蓋高杯보다는 無蓋高杯의 비율이 많아 용도나 제의 형식에 따라 다르게 제작 보급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같은 符號가 새겨진 토기편이 할미산성과 마북동 유적에서는 동일하게 확인되는 반면에 보정동 고분군에서는 출토되지 않고 있다. 부호의 의미와 목적은 파악하기 어려우나 보정동 고분군은 조성 집단 혹은 토기를 수급 받은 지역과 시기가 할미산성 마북동 유적과는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할미산성과 마북동 유적은 동시기에 같은 집단에 의해 형성되고 보정동 고분군은 두 유적보다는 늦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보정동 고분군은 加耶系集團이 조성한 것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마북동 유적 또한 기존의 백제 주거지 위에 새롭게 조성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집단의 移住로 볼 수 있다. 할미산성은 신라가 北進한 6세기 중반 무렵 남북으로 고구려 백제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대중국항구인 黨項城으로 향하는 길을 지킬 수 있는 길목이었다. 최근에는 多角建物址와 方形建物址등이 발견되어 內陸交通路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과 동시에 祭儀的機能도 함께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일이후 그 기능이 약해지면서 폐성되는데 이는 보정동 고분군, 마북동 유적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용인지역에 다시금 활기를 띠는 시기는 9세기 이후로 취락, 요지, 사지 등 다양한 유적들이 확인되고 있다. 현재까지 통일기 이후의 空白을 메울 수 있는 적극적인 고고학적 자료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백기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설득할 만한 논지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新羅遺蹟分布와 調査現況
Ⅲ. 遺物의 出土樣相및 分析
Ⅳ. 進出時期와 定着過程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9)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911-002818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