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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차순철 (동국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3호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145 - 189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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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경의 모습이 만들어진 시기는 8세기 이후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지만, 경주 동천동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고려한다면, 적어도 679년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된다. 경주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북천은 빈번하게 범람하였기 때문에 신라왕경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홍수에 대한 차수와 치수시설이 필요하였다. 이를 위하여 도심 안에 지하 석조와 배수로를 만들어서 홍수의 위협을 대비하였다. 그러나 북천의 하상 높이를 기준할 때 남안 지역의 지반 높이가 북안지역보다 높은 점은 북천의 범란에 따른 홍수 시 북안지역의 피해가 컸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 북안지역은 현재 하천 호안에서 북쪽으로 100m 이상 올라간 지점부터 방리를 만들었다고 생각되지만, 동천동 삼성아파트 부지에서 확인된 것처럼 완전하게 홍수를 피하지는 못했다고 생각된다. 북천 북쪽과 남쪽은 지형의 차이로 인해 홍수 시에는 북쪽의 피해가 더 컸다.
신라왕경 내 배수로는 대부분 동고서저 지형을 따라서 서쪽에 위치한 형산강으로 연결되도록 만들어졌다. 특히 북천의 호안쪽으로 바로 연결되기 보다는 지형을 따라서 서쪽으로 흐르도록 만든 소하천 혹은 배수시설을 통해서 도심 내 오폐수가 처리되도록 하였고, 이러한 모습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에 중요한 제사 중 하나인 사천상제는 양부의 주관으로 북천에서 이루어지다가 사찰을 옮겨지며, 당시 제사를 주관하던 사찰의 이름에 泉자가 확인되는 점은 제사와 관련하여 중요하다.
경주 동천동 지역에서 출토된 고식연화문수막새는 안압지에서도 같은 유물이 확인되므로, 적어도 유적의 하한연대는 7세기 중엽이다. 따라서, 이 시기부터 동천동 지역에 신라 왕경의 방리가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신라왕경의 범위와 추정
Ⅲ. 경주의 지형환경과 북천의 범람
Ⅳ. 북천과 주변 유적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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