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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혜영 (목포대학교)
저널정보
실천민속학회 실천민속학연구 실천민속학연구 제27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285 - 323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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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단을 꾸려 마을 안팎으로 포장걸립을 시도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죽동농악은 마을농악과 연예농악의 경계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을 안팎의 예인들을 초빙하고, 이웃마을의 기창수와 죽동마을의 강순동 상쇠가 이 농악단을 이끌었던 시절, 곡성죽동농악은 신태식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전성기를 맞이했다. 1957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소년농악단을 신설하면서 포장걸립을 돌며 꽃피우기 시작한 죽동농악은 연예화의 기로에 섰다. 마을에서 농악판이 벌어지면 어른들의 고깔소고와 소년들의 채상소고가 병행되었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 이 소년농악단은 이들이 장성하여 외지로 출타하거나 군대를 가면서 자연스레 해산되었다. 곡성 기창수상쇠를 중심으로한 포장걸립은 좌도농악판에서 마을 단위 농악단이 인근의 이름난 상쇠와 연대하여 나름의 활동반경을 확보하고 예술성과 전문성을 지향했던 정황을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특히 좌도농악에서 이름난 장구잽이였던 최상근과 그 일행들의 행적이 죽동농악과 연관되고,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포장걸립패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 이 걸립활동은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마을농악의 예능적 성격을 확장시켰고, 후학들의 재능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촉매 구실을 했다.
전판이계를 잇는 당대의 상쇠들은 모두 ‘농구’라는 역할을 거쳐 농악계에 입문했다. 상쇠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판굿의 흐름과 장단, 호흡을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을 거쳐 쇠를 잡은 이들은 어린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고 전승공동체의 보살핌을 받으며 육성된 인재이다. 죽동농악 예인들의 사사관계를 통해서 전라좌도농악의 예능의 맥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화춘의 쇳가락과 기창수의 판굿, 정오동의 채상소고, 최상근의 부들상모 장구놀이 등이 전수되었던 점이 확인된다. 이런 전수와 걸립 활동들이 단지 이름난 특정 개인의 능력이나 활약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마을농악의 전통과 주민들의 농악에 대한 애정, 후학 양성에 힘쓰면서 기꺼이 자비를 털었던 주민들의 적극적인 후원과 노력, 그리고 이웃간의 연계망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죽동농악의 계승자들은 선대의 명인들이 타계한 이후에도, 꾸준히 마을농악을 전승하고, 주민들이 농악전승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농악의 기예 뿐아니라, 농악 전승의 기반과 토대를 마련하면서 나름의 활로를 모색하던 전승공동체의 노력과 의지를 죽동농악인들의 활약상을 통해 읽어낼 수 있다. 농악 나름의 예술성을 지향하면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마을공동체의 농악문화로 일구어온 전통이기에 그 가치와 의미가 더욱 빛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좌도농악의 전승과 죽동농악 예인들의 계보
3. 죽동마을 안팎의 걸립활동과 소년농악단의 육성
4. 죽동농악 상쇠의 활동반경과 연행자의 교류활동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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