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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회과학원 사회과학연구논총 사회과학연구논총 제22권
발행연도
2009.12
수록면
79 - 11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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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와 외채로 경제개발을 추진하였던 대부분의 저개발국들은 1970년대 초부터 연체와 채무불이행을 경험하였지만, GNP대비 세계2위의 채무국이었던 한국은 한차례의 상환기간 연장이나 채무불이행도 경험하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는 만성적인 자금의 초과수요상태에서 신용할당이 이루어지고 투기세력과의 공모로 인한 금융스캔들과 소동이 빈번했던 한국이 안정적인 대외채무의 신용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을 추적하였다. 1기(1956-58년)의 위기는 원조물자의 감축과 공정환율의 조정에 의해 발생하였고 원조로 성장한 수많은 기업의 파산과 정치적 비용을 감수해야만 했다. 2기(1963-64년)는 중농정책과 자립형 경제개발모델로 시작했던 경제개발정책으로 인한 재정수요의 확대로 인한 외화부족사태로 나타났다. 이를 타개한 것은 대일청구권자금의 유입이었고, 환율, 금리현실화 조치를 통한 금융시장의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3기(1971-72년)는 정부보증으로 팽창한 기업의 부실과 파산으로 표출되었다. 정부는 ‘사채동결조치(8·3조치)’로 긴급수혈을 하고, 비은행 금융기관의 설립을 통하여 사금융을 양성화하는 개혁을 추진하는 한편, 자본시장 육성과 기업공개촉진을 유도하였다. 4기(1974-75년)의 위기는 1차 오일쇼크로 인한 물가상승으로 표출되었다. 오일달러의 확보를 위한 중동진출과 외화표시산업금융채권의 기채를 통하여 외화부족을 해결하였다. 5기(1979-80년)의 위기는 2차 오일쇼크와 중동건설붐의 붕괴로 부도의 속출로 표면화되었으며 정변을 통해 강력한 국가주도형 개발 프로그램은 이로써 종언을 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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