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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연식 (서울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80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5 - 3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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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閼川 楊山村’의 楊山은 산줄기 끝에 뻗어 나온 ‘버든산/버들산’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정 유적이 혁거세가 태어난 우물인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구덩이에서 발견된 불 먹은 돌, 불탄 목재와 토층구조로 보아 우물이었음이 확실하다. 그리고 나정이 양산 기슭에 있었다고 하므로 그렇다면 결국 양산은 남산 전체 또는 남산의 금오봉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제까지 閼川을 대개 북천으로 인식했으나 그렇다면 ‘알천 양산촌’은 ‘북천 남산촌’이 되는데 이는 성립되기 어려운 말이다. 음운학적으로 보건대 閼川은 본류 하천이라는 뜻의 [<SUP>*</SUP>arnar]의 표기수단으로, 及梁은 西梁(西川)을 뜻하는, [<SUP>*</SUP>kərpturk] 또는 그와 가까운 음의 표기수단으로 추정된다. 결국 알천, 급량은 모두 서천을 뜻한다. 그리고 알천이 북천이라는 증거로 삼았던 원성왕 즉위 기사는 김주원이 京北 ‘20리’에 살았다는 점을 주목하면 증거가 될 수 없다. 알천(서천)과 양산(남산) 사이의 오릉, 나정 주변에는 도당산토성, 남산토성과 같은 초기 군사유적이 있고 최근에는 탑동에서 원삼국시기의 토광목관묘가 발견되어 그곳을 신라 건국 초기 세력의 중심지로 볼 근거가 마련되었다.
양산촌 세력은 초기에 남산 기슭 식혜골 주변의 山谷間에 자리잡고 있다가 오릉 근처 개활지로 주거 영역을 넓혔던 것으로 추정되며, 점차 세력이 강성해지자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효율적으로 행사하기 위해, 남천을 건너 경주분지로 진출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楊山과 蘿井
Ⅲ. 閼川과 及梁
Ⅳ. 남산 기슭의 원삼국시대 유적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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