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목적은 여러 한용운 연보(年譜)를 대조하여 여러 쟁점을 도출하고, 자료에 근거하여 해소하는 데에 있다. 연구 배경은 한용운의 여러 연보에 주요 행적이 일치하지 않거나, 오류가 적지 않아 한용운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는 상황의 해소이다. 이 연구를 위해 필자는 Ⅱ장에서 평전의 출간과 연보의 대두 상황을 한용운 이미지의 유통 맥락과 연결시켜 서술하였다. Ⅲ장에서는 1919년 3·1 운동 전후의 연보 상황에서 빈번한 문제들을 유형화하여 제시하였다. 그리고 Ⅳ장에서 주요 사례를 쟁점으로 제시하고 여러 자료를 토대로 그 내용을 정리하였다. 특히, Ⅲ장에서는 여러 연보를 대조하면서 한용운의 연보 상황에 주요 행적에 관한 시점 불일치, 주요 행적의 포함 여부, 동일한 단체명의 다른 표기, 시점 기록의 모호성 문제 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1919년 이전의 연보 상황에는 시점 불일치 문제가 가장 빈번하고, 1919년 이후의 연보 상황에는 주요 행적의 포함 여부 문제가 가장 크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Ⅳ장에서는 시점 불일치 문제의 주요 사례로 이향·출가 시점, 러시아 여행의 출발·귀국 시점, 만주행의 내용과 귀국 시점 등을 검토하고, 각 시점을 1896년(18세)?1903년(25세), 1904년(26세) 3월경, 1911년(33세) 8?10월경으로 정리하였다. 만주행의 내용을 독립운동과 연결시키는 경향에 대해서는 여행 기간에 대한 고려, 여행 이후 한용운의 인적교류 등에 대해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주요 행적의 포함 여부 문제의 주요 사례로는 명진학교 보조과 입학 여부, 『음빙실문집』을 접한 경험, 불교동맹회의 조직, 1919년 이후의 다양한 사회 활동 부분을 검토하고, 각 시점을 1907년(29세) 3?12월, 1905년(27세) 6월?1910년(32세), 1914년 8월경으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명진학교 보조과 입학 여부와 『음빙실문집』에 관한 부분이 한용운의 근대 지식 습득과 연관되어 중요하다는 점, 불교 대중화라는 맥락에서 조선불교회와 함께 불교동맹회도 연보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는 점, 1919년 이후의 사회 활동이 관습적으로 누락되면서 한용운의 삶 전체를 이해하거나 후속 연구에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필자는 지면의 한계를 고려하여 주요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지만, 이 연구가 기존의 한용운 연보를 전반적으로 검토하면서 새로운 연보를 작성하기 위한 후속 연구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용운에 관한 이해가 심화되기를 기대한다.
We can find various discrepancies and errors in chronological listings of Han Yong-Un. These don’t help to understand world view of Han Yong-Un. In this contex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derive issues including chronological listings of Han Yong-Un, and to solve some of them. For this, in chapter Ⅱ, I examined the relevance of images, critical biographies, and chronological listings of Han Yong-Un. In chapter Ⅲ, I, examining the contents of chronological listings of Han Yong-Un, presented their several issues such as differences in the time of major incidents, the exclusion of major incidents, errors in organizations’ name, and the vague description of major incidents’ time. Then, in chapter Ⅳ, I reviewed the cases of several issues in chronological listings of Han Yong?Un, including time being priest and visiting Russia and Manchuria. I also explained the contents being involved in several organizations. And, through these, I argued that the resolution of the issues could be helpful in understanding and studying Han Yong-Un. I expect to make this article a small contribution to elucidate several issues in the chronological listing of Han Yong-Un, and to extend our understanding of his life and major care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