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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국제지역연구 국제지역연구 제12권 제3호
발행연도
2008.10
수록면
395 - 434 (40page)
DOI
10.18327/jias.2008.10.12.3.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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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은 칠레와 에쿠아도르를 제외한 모든 남미 국가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때문에 1500년 발견 이후 식민시대, 입헌왕정 시대 그리고 공화정 초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국경분쟁에 휩싸였다. 영유권 분쟁은 그 특성상 식민시대 이후나 전쟁 종료 후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써, 그 중요 쟁점은 역사적 근원에서 찾을 수 있다. 남미 대륙에서 영토 분쟁은 1494년 알렉산더 6세의 중재 하에 체결된 또르데질랴스 조약에 의거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령 식민 영토의 불명료한 경계선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식민시대에 분쟁이 발생하면 교황의 칙령과 국제 간의 협약이 최상의 해결책이었고, 협상의 원칙은 로마의 사유재산법에서 기원한 실효적 점유만이 유효성을 갖는다는 Uti Possidetis 이론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1750년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에서는 Uti 이론이 가장 합리적인 원칙으로 받아들여졌고, 이후에도 영유권 분쟁과 국경 확정을 위한 많은 조약들에서 이 이론이 적용되었다. 이때부터 또르데질랴스 자오선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에스파냐 식민지들이 공화정 체제로 독립을 이루고, 브라질이 입헌군주국 체제로 독립을 쟁취한 이후, 양대 세력 간에는 새로운 영유권 분쟁이 발생하였다. 이 분쟁에는 자원확보와 전략적 기지 확보를 위한 서구 열강의 개입이 있었다. 영유권 협상에서 파라과이의 한 역사학자가 “에스파냐 외교의 수치”라고까지 평가했던 브라질의 승리는 식민시대의 구스마웅, 제국기와 공화정기의 리우 브랑꾸 자작과 이따쥬바 남작과 같은 뛰어난 협상가들의 용의주도한 활약에 기인했다. 본 논문에서는 대항해시대와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또르데질랴스 자오선으로 제한 되 있었던 브라질 영토가 오늘날 세계 제 5위의 대국으로 탈바꿈 할 수 있었던 경위를 규명하고자 한다. 브라질 국경 형성 과정을 밝히기 위해서는 아비스 왕조 초기의 해외팽창과 발견으로부터 브라간싸 왕조 시대 체결된 각종 국제협약, 역사적 사건 그리고 외교정책 등에 이르기 까지 폭넓은 자료 분석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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